[여적]노예 영웅 '해리엇 터브먼'

조찬제 논설위원 2021. 1. 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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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의 새 20달러 화폐 디자인 예상도 /마이클 베슐로스 트위터 갈무리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인물이 해리엇 터브먼(1822~1913)이다. 터브먼은 노예, 여성, 흑인이라는 3중고 속에 한평생 노예 해방과 여성 참정권 운동에 헌신해 탁월한 성과를 남겼다. 1950년대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유명한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가 20세기를 대표하는 흑인 여성 운동가라면 터브먼은 19세기를 상징한다.

메릴랜드주의 한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난 터브먼은 주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노예제도가 폐지된 북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로 도망친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구출할 목적으로 노예 탈출 운동을 전개한다. ‘지하철도’로 불리는 비밀조직을 통해 약 70명의 노예를 탈출시켰다. 지하철도는 남북전쟁 중에도 가동됐다. 여성 최초로 흑인 보병부대를 이끈 작전에서 750여명의 노예를 구출했다. 출애굽기에 비견되며 ‘검은 모세’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 이때다.

터브먼이 미 역사에 낯선 이들에게 다가온 계기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20달러 지폐 인물 교체’ 주인공에 낙점되면서다. 하고많은 인물 중 왜 터브먼이었을까. 20달러 지폐 인물 교체는 여성 참정권 운동과 맞물려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수정헌법 19조 통과 100주년인 2020년에 맞춰 지폐 앞면 인물을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서 터브먼으로 교체할 계획이었다. 터브먼은 ‘여성을 20달러 지폐 인물로’라는 시민단체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와 로자 파크스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잭슨을 영웅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으로 좌절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그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25일 “재무부가 터브먼을 20달러 지폐 앞면에 넣기 위해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밝혔다. 터브먼은 미 화폐에 등장하는 첫 흑인은 아니지만 인종주의자 잭슨을 뒷면으로 밀어내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화폐에 역사와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변인 말처럼 터브먼이 20달러 지폐 인물로 등장하는 날, 미국은 한 걸음 더 도약할 것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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