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조선 선비의 '민낯'

박영서 2021. 1. 26. 19:5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선시대 선비를 생각하면 높은 덕망과 깊은 학문적 소양을 지닌 대쪽 같은 지식인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조선 선비들을 다루는 많은 책에선 대체로 조선 사대부는 목에 칼날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기개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저자가 바라보는 조선 선비상은 일반의 인식을 벗어난다.

조선 선비들은 말로는 주자와 성리학을 내걸었음에도 행동은 딴 판이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비의 배반, 박성순 지음 / 고즈윈 펴냄

조선시대 선비를 생각하면 높은 덕망과 깊은 학문적 소양을 지닌 대쪽 같은 지식인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조선 선비들을 다루는 많은 책에선 대체로 조선 사대부는 목에 칼날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기개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마치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기 힘든 성인군자(聖人君子)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긍정 일색이었던 선비에 대한 평가를 뒤집는다. 저자에 따르면 사림파 선비들은 현실에선 백성이나 나라보다는 가문과 당파의 안녕을 더 염려했다. 저자는 조광조 이후 중앙으로 진출한 사림들이 중앙권력이 향촌으로 뻗치는 것을 막는 한편, 향약(鄕約) 등을 통해 향촌사회에서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같은 사족 지배체제의 강화는 조선의 멸망을 불러들인 근원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조선 선비상은 일반의 인식을 벗어난다. 조선 선비들은 말로는 주자와 성리학을 내걸었음에도 행동은 딴 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명(名)과 실(實)을 달리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는 많다. '인조반정'은 옳은 정치로 돌이킨다는 '반정'(反正)이 아닌, 정권 탈환을 노린 서인 세력들이 광해군 12년때부터 계획해온 쿠데타일 뿐이었다. 정묘·병자호란은 '존주대의'(尊周大義)를 정권유지의 명분으로 이용해 온 사림파 정권이 자초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정치가로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이 내건 '북벌대의'(北伐大義)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을 뿐이었다. 송시열은 북벌사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평소 공언과는 달리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사건건 북벌을 반대했다. 결정적인 '선비의 배반'은 나라가 망할 때 일어났다. 구한말 집권 노론의 상당수 인사가 독립운동은 커녕 나라 팔아먹는데 앞장섰다. 이는 조선총독부 훈작과 상금 수여 기록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저자는 "선비라는 사람들이 사회지도층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궁극적으로 나라의 운명이 왜 그리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간다. 그 실마리로 '성리학'에 주목한다. 성리학은 심신을 수양하는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민에 대해 일방적으로 군림하는 사대부 독존의 사회체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 작용했다. 이같은 선비의 이중적 태도는 오늘날 정치인의 모습과 비슷하다. 결국 저자의 궁극적 목표는 요즘의 정치현실에 대한 우려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