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배복주 "가해자 동정론에 빠지면 성폭력 진실은 멀어져"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18일 신고받은 뒤 진상조사를 거쳐 25일 당 대표단에 보고한 배복주 부대표는 그 일주일을 ‘압박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숱하게 흔들린 그를 붙든 것은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과 1998년 인권단체인 ‘장애여성 공감’을 창립하고 20년 넘게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 온 경험이었다. <한겨레>는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 진상조사 등을 맡은 배 부대표를 26일 서울 영등포구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 일주일, 압박의 시간이었다”
배 부대표는 “지난 일주일 동안 내적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20년 동안 피해자 지원을 해오면서 몸에 훈련된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원칙이란 ‘가해자의 서사’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었다. 배 부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가해자와의 친분이나 삶의 궤적, 조직의 평가 등을 성폭력 사건과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가해자 동정론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고 결국 2차 피해가 발생한다. 그 대목을 가장 경계했다”고 밝혔다. 그가 이번 사건을 밝히면서 가해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음주 여부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부차적인 서사’가 성폭력의 원인으로 오해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배 부대표가 사건 처리 과정을 철저하게 비공개한 것 역시 2차 피해를 우려해서였다. 그는 “절차도 최소화했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도 최소화하는 것은 원칙으로 삼았다. 이 사건은 (당 차원의 결론을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로) 알려지면 무조건 2차 피해가 예상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혼자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가’, ‘당 지도부가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사건이 공개되고 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일주일 동안 배 부대표의 머리를 오갔던 생각들이다.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장 의원 덕분이라고 했다. 배 부대표는 “장 의원이 피해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우리 당 의원으로 많은 고민을 함께했다. 장 의원의 감수성과 여러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이 나에겐 배우는 시간들이었다. 피해자가 오히려 서포터의 역할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배 부대표는 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세가지의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피해자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고 일상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둔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해자에 대한 무관용적 처벌과 징계, 셋째는 2차 가해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원칙이었다. 이 과정을 거쳐 정의당이 성숙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신속히 가해 인정한 김종철 태도가 어려움 덜어”
당 대표가 연루된 사건임에도 여느 성폭력 사건과 달리 처리 결과 등에 대한 당내 이견이 많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배 부대표는 “정의당이 성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했던 순간들이 쌓여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5일 대표단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보고했을 때 다들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이 기존에 정치인의 성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말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이 과정을 대표단과 의원단이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가해자인 김 전 대표가 자기 행위를 온전히 인정하고 책임지겠다고 한 것도 사건을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는 이유였다고 한다. 배 부대표는 “안희정 사건과 비교할 수 있는데, 그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부인했다. 사실관계 다툼이 이어지면서 피해자가 엄청난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사건과 가해자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덜했다”고 밝혔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배 부대표는 여러 가지 선택지를 장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 선택지들 중에서 장 의원은 피해자 실명공개, 당 차원의 해결 등을 선택했다. 배 부대표는 장 의원의 선택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장 의원에게는 경찰 수사도 선택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이 이 사건을 엄중하게 처리해 나가는 절차를 밟는 것이 당을 위해서도 유효한 방안이라고 장 의원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피해자의) 판단을 뒤집고 갈 수는 없었다”며 이번 사건을 수사기관에 고소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 실명공개에 대해서는 2차 가해를 우려해 처음엔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 의원은 다른 판단을 했다. 배 부대표는 “장 의원의 경우 피해자이자 국회의원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서 정치인으로의 일상을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어야 정치의 공간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실명을 공개하기로 마음 먹었을 것”이라고 했다.
배 부대표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가해자’를 나와 무관한 존재로 치부하는 순간 성폭력 사건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폭력 문제는 일상의 문제다. 평범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언론이나 여론은 가해자가 우리 주변에는 없는 극단적 사람이라고 취급을 한다. 하지만 김종철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짚었다. 이어 “일상에서 모든 사람이 상대의 존엄을 지키고, 그렇지 않음을 스스로 경계하며 소통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 이상 성폭력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기보다 그저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 부대표는 “작은 실수를 잘 반성하고 그 실수를 잘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일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차 가해 제보 받는 중…법적 조처할 것”
아직 배 부대표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당 젠더인권본부장이자 부대표로 이번 사건에 당원과 국민들에게 거듭 사과를 한 만큼 그도 정의당을 바꿔야 할 책임을 가진 이들 중 하나다. 우선은 2차가해를 막는 것이 급선무다. 그는 “현재 발생되고 있는 2차 가해에 대해서는 제보를 받는 중이다. 법적 조처를 포함해 엄격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다”고 말했다. 당의 체질 개선과 쇄신도 주요 과제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며 가해자가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 등 약속한 과제를 이행하는 지도 점검해야 한다.
배 부대표는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잘 처리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모든 당원이 보고 있다. 당이 어떻게 이 사건을 처리하느냐가 하나의 학습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 처리 과정이 재발 방지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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