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한·미 정상 만나 대북정책 공조 먼저.. 반전 계기 만들어야" [세계초대석]

김민서 2021. 1. 2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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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 다자적 대화 틀 중시
北 도발엔 제재 등 강경책 꺼낼 듯
올 봄 한·미훈련이 중요한 분수령
北, 쌍중단 파기 핑계 도발 가능성
대북제재 문제, 美와 깊은 논의 필요
한·미 정책 공조로 北 호응 끌어내야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 소재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북·미 관계 및 한·미 동맹 등 한반도 정세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경남대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1일 서울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만난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 CNN방송을 보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시청하던 박 총장은 “중요한 얘기가 안 나오네요”라며 아쉬운 표정으로 TV를 껐다. ‘중요한 얘기’는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사안을 말한다.

1999∼2001년 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 총장은 평생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연구·교육에 헌신한 남북관계의 산증인이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으로 그해 9월 평양에서 8시간 동안 특별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머물던 자강도 특각까지 찾아가 그를 설득해 남북 국방장관 회담 약속을 얻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통일부 장관이 북한 최고지도자와 남북 협상 의제를 놓고 직접 담판 지은 유일무이한 사례다.

한반도 체스판이 큰 변화의 계기를 맞이했다. 북한은 제8차 당대회를 마쳤고 미국은 새 대통령이 취임했으며 한국은 외교안보 라인을 재정비했다. 북핵 문제와 한·미, 북·미 관계 및 남북관계를 둘러싼 고차 방정식은 여전한 난제다. 박 총장은 이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한·미 정상회담부터 열어야 한다”며 “문재인, 바이든 두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만나 대북정책을 조율하고 공조 방안을 확정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박 총장과의 일문일답.

ㅡ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다. 북한에 큰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의 혼란한 국내정치 상황과 대중(對中) 정책 중요성을 고려할 때 북한 핵문제의 정책적 우선순위는 어느 정도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 시절의 주요 업적 중 하나였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폐기한 이란 핵합의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 일차적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 발달이 고도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바마 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 같은 형태의 ‘방임’ 수준으로 회귀하진 않으리라고 본다.”

ㅡ북핵 문제에 대한 기본 접근이 트럼프 정부 때와는 달라질 것 같은데.

“북핵 문제에 대한 기본적 접근은 톱다운(top-down)이 아닌 보텀업(bottom-up)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양자회담을 비롯해 다자적 대화도 함께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변 이해당사국들 의견을 수렴하는 다자주의 원칙과 민주동맹 국가 간 협력을 강조하는 다자적 대화의 틀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ㅡ바이든 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은 어떨 것으로 보나.

“원칙론적 접근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즉 기본적으로 북한 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이라는 외교적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접근하겠지만,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는 국제협력을 통한 경제적 제재 강화와 군사적 대응 등 강경한 방식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ㅡ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멈춰선 상태다. 돌파구가 안 보인다.

“오는 3∼4월 있을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남북관계 및 북·미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다각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ㅡ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에 강하게 반발한다.

“북한은 2018년 4월 이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유예하고 있다. 중단키로 한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대화 재개 및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전시작전권 전환을 이유로 실행할 가능성이 큰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 삼아 쌍중단(북한 핵실험·ICBM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파기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ㅡ김정은 총비서가 제8차 당대회를 마무리하며 핵전쟁 억제력 강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핵추진 잠수함과 극초음속 무기 등 전략무기 개발도 공식화했는데.

“복합적 의도가 있어 보인다. 향후 군사적 도발 가능성 시사를 통한 대미·대남 위협이거나 대화를 요구하는 압박이자 몸값을 올려 향후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양보를 요구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북한 당대회가 주민을 대상으로 한 대내적 정치행사로서 의미가 더 크다는 점에서 핵무력과 신무기를 강조하는 것은 실적이 부족한 경제 분야를 대체·보완하기 위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ㅡ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의 바이든 신행정부가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고 긍정적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 및 유인책 제시를 하면서도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모색해 갈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미국, 북한이 실질적 대화와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우리가 중재안을 만들어 설득하는 다각적 외교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상반기에는 한·미 공조에 방점을 두고 한·미 간 대북정책 일치를 이루면서 북한이 전략적 도발을 하지 않도록 상황 관리를 하는 한편 적극적 대북 접근 모색도 필요하다.”

ㅡ문재인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힘을 많이 잃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사건 및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남북관계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남북관계 냉각 책임을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우리 측에 돌리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조만간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바이든 정부도 대북정책 검토 및 정책 입안자 결정에 시간이 필요하고 북한도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신중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상반기 중 남북관계 급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ㅡ여권 일각에선 김정은 총비서의 서울 답방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서울 답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장기간 정체 상태와 상호 불신이 심화돼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남북 간 신뢰관계가 더 돈독해져야 한다. 적절한 환경과 여건 형성이 마련되는 등 분위기가 개선돼야 한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ㅡ북한은 얼마 전 마친 제8차 당대회를 통해 우리 정부가 제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협력 등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남북 정상 간 합의사항 이행과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합의 이행 상황을 재점검하고 제한 사항 등을 식별해 이행을 위한 실질적 방안과 로드맵을 만들고 남북 합의 실천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특히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대북제재 문제도 미국과 우선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ㅡ남북관계는 북·미 관계의 종속변수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이 요구한 근본적 문제는 한·미 군사훈련과 첨단 군사장비의 한반도 반입 중단이다. 이는 미국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안으로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북한이 요구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관련한 전향적 입장 및 태도 전환이 필요한데 이런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을 설득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ㅡ한·미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만나 대북정책을 조율하고 공조 방안을 확정짓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요구하는 본질적 문제는 한·미 관계, 남남갈등을 극도로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도전적 과제이기도 하다.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경우 이를 토대로 북한에 대해 본질적·근본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상회담이나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개최 등을 제안해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담=김민서 국제부 차장

박재규 총장은 ●경남대 총장(1986년∼현재)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대통령 자문위원(2018년 4월∼현재) ●통일부 장관·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1999년 12월∼2001년 3월)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2000년) ●북한대학원대 총장(2005∼2009년) ●주한미군사령관 자문위원(2012년 4월∼2014년 2월)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 ‘글로벌 언더스탠딩’ 상(2001년), 미 연방의회 특별상·프랑스 시라크재단 분쟁방지 심사위원특별상(2009년)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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