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전 국민학생·서울살이 11년차 영국인·소방관의 기록들

김준억 입력 2021. 1. 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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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고독한 이방인의 산책'·'레스큐'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1963년 당시 시골의 '국민학교' 3학년의 일기, 서울에서 11년째 사는 영국인의 고백,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119구조대원의 기록.

새로 나온 책들 가운데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이종옥),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다니엘 튜더), '레스큐'(김강윤) 등은 독특한 이력의 저자들이 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겼다.

1954년생 이종옥씨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63년부터 입대하는 1975년까지 쓴 일기 가운데 60편을 골라 그대로 복원한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글항아리)는 반세기 전 한국의 가난한 풍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기성회비를 가져가야 하는 아이와 돈이 없어 주지 못하는 부모의 실랑이, 배가 고파 술지게미를 먹고 온 가족이 널브러져 자다가 먹은 걸 그대로 게워내는 이야기, 강냉이죽을 배급받고 돼지죽이라고 놀리는 급우들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운동장으로 뛰쳐 나가 물로 배를 채운 이야기 등 산골의 가난한 아이가 겪었던 일상이 담긴 일기장은 세밀한 심리 묘사가 일품이다.

다른 날보다 길게 쓴 가을 소풍을 다녀온 날의 일기에선 가난의 풍경이 두드러진다.

"오늘은 가을 소풍 날. 두 여동생은 보리밥 도시락을 들고 신이 나 학교로 달음질쳐 가는데 나는 가질 않았다. 이제는 아버지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 안 가는 날 소풀 뜯기는 일은 내 차지다"라고 시작한 일기는 봄소풍 때의 아픈 기억도 함께 적었다.

봄소풍 때 신이 나 뛰어가다 미끄러지면서 고무신이 찢어져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야 했고, 김밥을 싸 온 친구들과 달리 꽁보리밥에 장아찌 도시락이 부끄러워 바위 뒤에서 몰래 숨어서 먹었다며 그때 일을 생각하고 소풍 가길 포기했다고 썼다.

소풍 대신 암소를 몰고 갈대가 많은 개울가로 가서 놀고 있는데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아뿔사, 오늘은 하필 이곳으로 소풍을 오고 있으니 이런 몰골을 반 동무들에게 보일 순 없지. 부지런히 소를 몰고 개울을 건너 보이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가 소풍이 끝나 모두 돌아갈 때까지 숨어 있었다"고 그날의 일기를 마친다.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대필을 의심할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나 교육청 글짓기 대회에 나가게 됐지만, 난생처음 탄 버스에 멀미로 기절하는 바람에 참가도 못 하고 "30리 뻐스 길에 죽을 뻔한 촌놈"이란 소문만 났다.

57년 전 일기를 꺼내놓는 것에 대해 저자는 평생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자 살아갈 힘이 됐기 때문이며 동시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다니엘 튜더는 "한국 맥주 맛없다"란 기사 등으로 유명한 인사지만, 고독한 이방인이기도 하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그의 에세이집은 도시와 동네를 산책하며 한국인의 외로움과 '나'로 살아갈 자유를 말한다. 누구나 결점투성이의 존재지만, 요기 내어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드러낼 때 우리가 잃어버린 연결된 느낌을 되찾을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전직 언론인답게 한국 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한 글도 실렸다. 저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서가 정(情)이라지만, 그게 과연 여전히 유효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한국은 북유럽보다 더 외로울 수 있다고도 한다. 저자는 "개인주의 전통이 깊은 나라들에는 동료 또는 가족 구성원 간의 상대적으로 약한 결속을 보완해주는 장치가 있다. 일례로 북유럽 국가는 통상적으로 높은 사회적 신뢰, 사회적 자본, 그리고 복지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부산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 수상구조대 김강윤 팀장이 쓴 '레스큐'(리더북스)는 14년 차 현직 소방관의 기억 속에 각인 된 처절한 삶의 기록들이다.

구조대원들은 살려 달라고 외치는 이들 등을 구하려 사지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불 속에서 엄마와 함께 갇힌 어린아이를 보며 자신의 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산업현장에서 온몸이 짓이겨진 채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보며 가여운 삶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매년 10여 명 이상 순직하는 소방관들의 삶을 부디 기억해야 한다고도 당부한다. 피를 토하는 만삭의 산모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수년이 지나도 그 현장을 지날 때면 눈을 감아버리는 저자의 선배 이야기는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고 큰지 보여준다. 동료를 떠나보낸 후 결국 자신도 따라서 삶을 버리는 소방관의 이야기가 결코 이들이 죽지 않는 영웅의 심장이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의 여린 마음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justdu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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