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돌이 학생회장' 정세균, 국무총리 넘어서나

2021. 1. 2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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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는 늘 웃는 얼굴이라, 별명이 '미스터 스마일'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유년시절은 지독하게 가난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9월 26일(음력) 전북 진안의 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도와 화전을 일구고, 나뭇짐과 농사일을 거들며 자랐고, '밀기울' (빻은 밀을 체로 쳐서 남은 찌꺼기로 만든 수제비)과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다. 정 총리가 '진촌'(진짜 촌놈)이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하는 배경이다.

-------------------------------- 1. 유년 시절 : 정약용의 가난한 후예 -------------------------------- 넉넉하지 않은 사정에도, 부모님은 자녀를 공부시켜 보려고 노심초사했다. 정 총리 아버지도 한국전쟁 이후 면 의원을 한 번 했다. 덕분에 정 총리도 밭을 일구며 취학 전에 한글을 뗐고 천자문을 읽었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3학년 과정은 건너뛰고 4학년으로 월반해 남들보다 일찍 졸업했다. 전 과목 만점 성적이라, 처음엔 본인이 천재인 줄 알았다고 한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과 함께 [출처=정세균 총리측 제공]

초등학교 졸업 뒤, 공부를 이어갈 형편이 되지 않아 중학교 진학은 포기한다. 하지만 마침 마을 인근에 고등공민학교가 생긴다. 정식 인가가 나지 않은 곳이지만, 공군사관학교 출신 교장선생님이 사비를 털어서 중학교를 가지 못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아이들 하나하나 애정을 보여주는 시인 선생님을 만나 1년 남짓만에 검정고시에 통과한다.

----------------------------------------- 2. 청소년 시절 : ‘맹모삼천지교’같은 전학, 빵돌이 ------------------------------------------ 정 총리는 객지에서 학업을 위해 세 번이나 학교를 옮기기도 했다. 정 총리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할지 돈을 벌지 고민하다가 무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새로 생긴 학교라 학업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아 6개월만에 그만둔다.

이어 전주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전체 응시생 8등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정 총리에겐 작업실에서 쇠를 깎고 용접하는 학교 수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전주 공고 선생님이 "너는 꼭 대학에 가라"는 조언을 해준다.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출처= 정세균 총리측 제공]

전전긍긍한 끝에 전주 신흥고 교장실에 무턱대고 찾아간다. 성적표를 보여주며 "제가 공부는 잘합니다. 원래 고등학교 나와 취직하려 했지만 대학을 가고 싶습니다.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요구하고, 모의고사를 치르고 입학 허가를 받는다. 학비 면제에, 생활비는 매점에서 빵을 팔며 벌 수 있도록 교장선생님의 배려를 받게 된다.

'빵돌이'(당시 정세균 총리 별명) 생활을 하면서 웅변대회 1등도 하고, 학생회장에도 당선된다. 정 총리 인생의 첫 선출직 당선으로, 그때 '지지받는다'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당시 부회장 러닝메이트가 송완용(전 전북 정무부지사, 전 쌍용정보통신 대표이사)이다.

-------------------- 3.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절 --------------------- 3수 끝에 고려대 법대(71학번)에 진학한다. 생활비는 종로구 팔판동에 입주 과외를 하며 먹고 자는 것을 해결했다. 1학년 때는 김대중 당시 후보의 장충단 유세를 들으러 다녔고, 학보사인 고대신문 기자생활도 시작한다. 동시에 법대 과대표를 하며 쌓은 법대 친구들 지지를 바탕으로 1973년 고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당선 [출처=정세균 총리측 제공]

학생회 활동을 하며 10월 유신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로 친구인 송인회(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전 웅진홀딩스 대표)가 잡혀간다. 면회를 간 정 총리에게 "분을 삭이고 대책없이 나서서 무너지느니 스스로 보전해서 사회에서 역할을 하라"는 조언을 한다.

고려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출처=정세균 총리측 제공]

정 총리는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체질이다. 그 시절 막걸리로 유명한 고려대에서 "한 잔도 안 받아먹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비결"로, 끝까지 상대방의 대화를 함께해주는 처세술과 유화적 성격이 꼽힌다.

고려대 친구들과 함께 [출처= 정세균 총리측 제공]

------------------------------- 4. 쌍용 시절 : 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 1위 ------------------------------- 1974년 8월까지 학생회장 임기를 끝내고 1975년 군입대를 한다. 경북 안동에 있던 육군 36사단 정훈병으로 병장 만기제대를 한다. 이미 법관의 꿈은 접어 결국 1978년 종합무역상사인 쌍용에 입사한다. 입사 후 부인 최혜경씨(대학교 3학년 때 미팅에서 첫 만남)와 결혼해 슬하 1남 1녀를 두게 된다.

1988년 미국 Long Beach항에 입항한 쌍용 시멘트 수출선에 올라 하역작업 주관 [출처=정세균 총리측 제공]

이후 쌍용에서 ‘가장 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 1위’에 꼽히며, 승승장구 한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 LA와 뉴욕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는데, 1988년엔 미국 페퍼다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MBA)도 딴다. 이 때 국제경제와 실물경제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된다. 1990년 한국으로 돌아와 임원으로 승진하지만, 1994년 통합선거법이 제정 소식을 듣고 정치를 결심한다.

-------------------- 5. 여의도 생활 --------------------

(좌) 1996년 15대 총선 무진장 새정치국민회의 선거 벽보 (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출처=정세균 총리측 제공]

1996년 6월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되며 DJ키즈로 정치를 시작한다. 15대 총선 때 고향인 전북 진안·무주·장수(이른바 무진장)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국민회의 후보로 당선돼 이후 내리 4선을 한다.

(좌)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우)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의장석 점거 [출처=정세균 총리측 제공]

2002년 전북지사 출마를 위해 당내 경선에 나갔지만 패배한 이후,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의 권유로 후보 정책실장을 맡게 된다. 노무현 후보 지지도 하락 때, 후보교체론이 불거졌지만 정 총리는 끝까지 원칙을 지키며 후보를 지킨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 되면서 정 총리의 입지도 한층 올라선다. 이후 2003년 새천년민주당의 정책위의장,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하며 노무현 정부와 함께한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정 총리는 2008년 민주당 대표직에 오르면서 2년 동안 야당 대표로서 맞서게 된다. 당 대표 있는 동안, 이명박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2009년 10월 재보궐과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큰 승리를 거둔다. 당내 입지를 굳히는 듯 보였지만, 2010년 7월 재보선 패배로 정 총리는 당 대표에서 물러난다.

2016년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출처=매일경제]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종로로 옮기면서 승부수를 띄운다. 이후 종로에서 2번 당선되며 6선 의원이 된다. 2016년 전반기 국회의장을 맡으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2017년 19대 대선 문재인 정부 탄생 등을 국회 수장으로 뒷받침한다.

----------------- 6. ‘코로나’ 국무총리 ----------------- 2019년 12월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게 된다. 정 총리는 코로나 19와 총리 임기를 같이 한다. 신천지 사태가 터지면서 대구를 본격 방문하는 등 '코로나 총리'로 임기 내내 동분서주한다.

국무총리 시절 코로나19 신천지 사태로 대구 방문 당시 [출처= 정세균 총리측 제공]

--------------- 7. 평가 및 과제 --------------- 정 총리는 여의도에서 '경제통'으로, 동시에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신사로 유명하다. 이제 ‘코로나 총리’를 넘어 당 대권주자로 우뚝 서는 과제가 정 총리에게 남아있다. 지난 19일 발표된 ‘민주당 제3의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17%)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현재 유력 대권주자들 사이 선호도 경쟁에서는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 부드러운 이미지, 호남 출신임에도 옅은 지역색, 당파를 초월해 약한 지지층 결집력 등이 이유로 꼽힌다.

[ 주진희 기자/ jhookiz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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