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여 다룬 PD "30년 살인 낙인, 어떻게 버텼는지 존경스러워"

권영은 2021. 1. 26. 17: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죄를 짓지도 않고 20년을 억울하게 옥살이한 윤성여(54)씨는 2009년 출소 후에도 창살 없는 감옥에서 10여년을 더 살았다.

지난해 12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 선고로 누명을 벗기 전까지다.

여전히 자신이 복역한 교도소가 있는 충북 청주에 홀로 살고 있는 윤씨는 오후 10시가 지나면 외출하지 않는다.

진범 이춘재의 자백이 나온 2019년 10월, 이 PD가 무작정 윤씨의 집을 찾아간 게 시작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BS '다큐 인사이트-성여' 이인건 PD 인터뷰
6개월 간 촬영, 최대한 연출 배제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
"윤성여 씨 깊게 봐야 진가가 나오는 사람"
KBS '다큐 인사이트-성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0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끝에 지난해 무죄로 밝혀진 윤성여씨의 삶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KBS 제공

죄를 짓지도 않고 20년을 억울하게 옥살이한 윤성여(54)씨는 2009년 출소 후에도 창살 없는 감옥에서 10여년을 더 살았다. 지난해 12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 선고로 누명을 벗기 전까지다. 여전히 자신이 복역한 교도소가 있는 충북 청주에 홀로 살고 있는 윤씨는 오후 10시가 지나면 외출하지 않는다. 여행 한 번 간 적 없다. 새 사람을 곁에 두는 법도 없다. "내가 사람을 잘 안 만나는 이유가 그거야. 누군가에게 또 휩쓸릴까 봐."

KBS '다큐 인사이트-성여(성여)'를 연출한 이인건(36) PD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살인자라는 낙인을 안고 산 30여년을 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는 것도 정말 놀랍다"며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방영된 '성여'는 이른바 '화성 8차 사건'이 아닌 인간 윤성여의 삶을 최초로 보여주는 2부작 휴먼 다큐멘터리다. 진범 이춘재의 자백이 나온 2019년 10월, 이 PD가 무작정 윤씨의 집을 찾아간 게 시작이다. 윤씨가 마음을 돌린 건 그로부터 6개월 후. 첫 촬영이 이뤄진 작년 6월 15일 재심 2차 공판 이후 최종 선고가 있던 같은 해 12월 17일까지, 그를 향한 카메라는 쉼 없이 돌았다.

6개월 간 윤성여씨(가운데)의 곁에서 그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낸 이인건(맨 오른쪽) PD와 한진운(맨 왼쪽) 카메라감독. 이 PD 제공

"윤씨는 멀리서 잠깐 보면 분명 비호감이이에요. 거친 말을 툭툭 내뱉고, 표현도 서툴고, 약간의 허세도 있거든요. 오래 보고, 깊게 봐야 진가가 나오는 사람이죠." 윤씨와의 거리를 좀체 좁히지 못했던 촬영 초반부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이 PD는 촬영 전 세운 세 가지 다짐만은 놓지 않았다. 설사 비호감으로 보이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연출은 최소화하자는 게 첫째였다. "카메라가 있건 없건 평소 자신의 모습대로 행동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어요. 또 그의 이야기가 일방적인 하소연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는 건 절대 피하려고 했죠." 이 거리감을 잘 유지한 덕에 윤씨의 진면모를 화면에 담아낼 수 있었다.

작품 속 윤씨는 정확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만 실상은 꿰뚫는다. 1989년 7월 어느 저녁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붙잡혀간 그는 "돈 없고, '빽' 없고, 가진 것 없고, 무식하고 그래서 (경찰이 나를) 찍지 않았을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지나간 세월 잡을 수 없고, 돌릴 수 없다"며 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는다.

그의 감정이 흔들리는 모습은 단 한 장면에서 보일 뿐이다. 말을 잇지 못하고,두통과 구토를 호소했다. 경찰 수사 과정을 떠올릴 때다. 재심 과정에서 당시 경찰의 고문 등 강압수사가 있었던 게 드러났다. 이 PD는 "카메라엔 담지 못했는데 당시 수사한 형사들이 처음 출석한 재심 공판 직전에도 딱 한 번 더 그런 모습을 보였다"며 "덤덤한 것 같았지만 온몸은 그렇게 반응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여씨가 지난달 17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후 웃어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살인을 하지 않고도 죄를 지었다는 자백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의 재심 변호를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20대 초반 세상 경험이 없고 배우지 못했던 윤씨는 그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현실적 감각이 현저히 떨어지고, 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설명한다. 억울한 사건의 피해자 대부분은 원통함을 호소하기보단 포기하고 체념한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이 PD는 "이젠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았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홀로 외롭지 않도록 그의 말을 들어주고 옆에서 있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씨 못지 않은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의 가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