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1월 27일 아폴로 1호가 폭발한 날
1969년 7월 20일 오후8시17분 UTC에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 이글호가 달 적도 부근의 '고요의 바다'에 (공기가 없으니 당연하게) 고요하게 착륙했다. 6시간이 지난 후 선장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내렸고, 20분 후에는 버즈 올드린이 내려왔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이름이 닐인지 루이인지 헷갈리기는 해도 암스트롱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버즈 올드린은 만화 영화 '토이스토리'의 캐릭터로 더 유명하다.
아폴로 11호의 우주인은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달에는 두 사람만 발자국을 남겼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사람은 어디에 있었을까? 두 사람이 달에서 활동하는 동안 나머지 한 사람은 두 사람을 태우고 지구로 귀환할 사령선 컬럼비아를 조종하며 달 궤도를 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콜린스. 아폴로 11호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우리 아버지마저 그의 이름은 자주 까먹곤 했다.
우리는 첫 번째만, 그것도 성공한 첫 번째만 기억한다. 눈앞에 드러난 영웅만 기억하려고 한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그렇다면 아폴로 1호부터 10호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달 착륙 이전의 열 차례 탐험가들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아폴로 1호 우주인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수업 시간이나 신문 기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정도라면 필시 무슨 사연이 있다고 봐야 한다.
우주선에는 지구와 똑같은 공기를 실어야 할까? 지구 대기 가운데 우리가 호흡하는 데 필요한 산소는 21%에 불과하다. 숨 쉬는 데 전혀 필요 없는 질소가 무려 78%나 된다. 우주인의 호흡을 위해서는 질소를 빼고 산소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사(NASA)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NASA는 사령선에 100% 순수한 산소를 채웠다. 그것도 고압으로.
우주선 AS-204는 1967년 2월 21일 발사되어 지구 궤도를 돌 예정이었다. 이에 앞서 1월 27일 세 우주인이 우주선에 올라 예행연습을 했다. 당연히 사령선 공기는 100% 산소다. 산소 농도가 높으니 기분은 좋고 머리는 맑았다. 지상 통제센터에 "불이야! 선내에 불이 났어!"란 외침이 들려왔다.
통제센터 요원들이 달려가서 해치를 열려고 했으나 열 수 없었다. 해치는 안쪽으로 여는 구조였는데, 선내의 압력이 높기 때문에 먼저 감압 조치를 해야 했다. 여기에는 90초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중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주인들은 화재 후 15초 만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화재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1) 구리 전선의 은도금이 벗겨졌고 (2) 냉각제 에틸렌글리콜이 전기분해 되어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는데 (3) 가압된 순수한 산소가 화재를 일으켰다. 불은 우주인들의 우주복을 녹여버렸을 정도로 격렬했다. (승무원들은 소사가 아니라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AS-204 화재 사건은 이후 미국 우주선 제작에 큰 교훈으로 작용했다. 우선 해치는 바깥쪽으로 7초 안에 열리도록 했으며, 가연성 재료는 불연성 재료로 대치되었고, 나일론으로 만들던 우주복은 유리섬유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선내 기압을 제한했다. 그리고 순수 산소의 사용을 금지했다. AS-204 화재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후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머큐리와 제미니 프로젝트 이후 이어지는 아폴로 달 탐사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사망한 우주인들의 아내들은 우주 비행사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서 AS-204를 아폴로 1호로 부를 것을 요구했고, NASA는 이 사고가 '아폴로 계획의 첫 유인 비행을 위한 지상 훈련 중 실패'라는 이유로 AS-204를 아폴로 1호로 명명했다. 아폴로 2호와 3호는 없고 1967년 11월 9일에 새턴 로켓에 실려 발사된 아폴로 4호부터 아폴로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민간 우주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우주 산업의 진입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무수한 실패라는 어깨 위에서 이뤄진다. 오늘 1월 27일은 아폴로 1호가 폭발된 날이며, 세 우주인의 이름은 거스 그리섬, 에드워드 화이트, 로저 채피다. 기억하시길!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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