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만 붙으면 무조건 뛴다?..어른대는 '닷컴 버블' 그림자

이정훈 입력 2021. 1. 26. 16: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년 美·유럽 ESG펀드 94兆 순유입..돈냄새에 수익도 '쑥'
INDXX 재생에너지지수 PER 42배.."주가 과대평가 속출"
바이든發 탈탄소정책 등 환경 우호적..높은 가격은 부담
기업들 '그린워싱'도 ESG 투자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거칠 것 없이 잘 나가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펀드에도 현타(=현실자각 타임)의 시간이 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탈(脫)탄소 정책에 대한 기대로 환경을 중심으로 한 ESG 투자가 봇물을 이루면서 관련 주식들의 밸류에이션이 과도하게 높아진 탓으로, 올해 ESG펀드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환경과 사회, 기업 지배구조에 앞장 서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만 850억달러(원화 약 94조1000억원)라는 사상 최대 자금 순유입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328억달러라는 역대 최대 순유입을 기록했고, 유럽에서도 430억유로(530억달러)가 순유입됐다. 이 같은 자금 순유입은 올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 유럽에서 신규 설정된 ETF 가운데 절반이 ESG에 특화된 펀드였다. 작년 9월말 기준으로 ESG 펀드 총자산은 1조2000억달러로 역사상 최대치였다.

이처럼 자금이 꾸준히 유입된 덕에 ESG ETF는 주가수익비율(PER)을 높여가고 있고, 이제는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올라온 상태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적인 수소연료전지 제조업체인 플러그파워(Plug Power)는 아직도 수익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지만, 그 주가는 지난해 초 이후 무려 2000% 이상 상승률을 기록하며 테슬라 주가 상승률을 3배 가까이 웃돌았다.

에튼 밴스의 크리스 다이어 글로벌 주식담당 이사는 “이처럼 개별 주식 주가가 가파르게 뛰면서 이런 종목들이 편입돼 있는 ESG ETF도 과대평가되는 위험이 나타나고 있다”며 “액티브든 패시브든 투자자들은 이런 테마주들을 쫓고 있고 이는 일부 불편할 정도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단순한 투자는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나스닥100지수는 이미 과거 2000년 초의 닷컴 버블 당시 밸류에이션에 바짝 다가서 있다. 이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같은 금융사들은 나스닥 버블 붕괴를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특히 ESG 투자 열풍으로 인해 신재생 에너지 관련주들의 주가가 가파르게 뛴 이후 JP모건은 갑작스러운 주가 급락 조정 가능성을 경고하며 재생에너지분야에서 선별적인 주식 투자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나섰다.

실제 INDXX 재생에너지지수는 현재 42배라는 엄청난 PER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월드지수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밸류에이션이다. 또한 MSCI 글로벌 환경지수와 MSCI 월드 ESG리더스지수도 사상 최고치까지 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투자자들이 고평가된 주식을 피하는 일이 생긴다면 ESG 펀드의 수익률은 크게 하락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특히 작년 주가 랠리 과정에서 크게 뛴 테크주와 재생에너지주 비중이 높은 펀드는 그럴 위험이 더 크다는 것. 지난해 10억달러 이상 자산을 가진 펀드 중 최고 수익률을 낸 BNP파리바자산운용의 ‘에너지 트랜지션 펀드’는 165%나 뛰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랠리가 계속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ESG 가운데서도 `E(환경)`가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로 인해 MSCI 글로벌 환경지수는 지난해 93% 오른 뒤 올 들어서는 1월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ETF상품인 아이셰어즈 글로벌 재생에너지ETF 가격도 작년에만 140% 뛰었다.

물론 상황은 여전히 우호적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린에너지와 인프라 투자를 늘리기로 한 만큼 아직도 환경관련 펀드에 자금이 더 유입될 여지는 있다. 유럽에서의 2조2000억달러에 이르는 팬데믹 부양책은 환경관련 정책에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린본드와 소셜본드, 지속가능채권 등의 발행도 올해에만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펀드 자금 유입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BoA 측은 재생에너지 ETF 자금흐름은 잠재적인 버블을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유틸리티업체들의 주가는 작년 4분기에만 40% 이상 뛰었고 아이셰어즈 글로벌 재생에너지 ETF 자금 순유입 규모는 4배나 늘었다. 피터 비츠티거 BoA 스트래티지스트는 “펀드로 밀려드는 자금 덕에 주가가 계속 울라갈 것으로 기대하지만, 밸류에이션은 더이상 펀더멘털에 의해 지지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더이상 투자자들에게 ESG EFT에 투자하라고 권유하기 힘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JP모건도 플러그파워와 다른 수소연료업체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Sell)’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면서 ”이들 주식은 과도하게 고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나인티원의 글로벌 환경펀드를 운용하는 데어드리 쿠퍼 매니저는 ”미국에서 태양광과 수소 관련주은 펀더멘털에 비해 너무 과도하게 올랐다“며 ”이들 종목은 정상적인 수준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환경관련 ESG 펀드는 그린워싱(Greenwashing·실제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이라고 하는 또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최근 슈로더자산운용이 25조달러 이상을 보유한 연금펀드와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들은 ESG 투자의 가장 큰 장애물로 그린워싱을 꼽았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ESG 펀드가 올해에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익률을 낼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ESG 펀드가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고 팬아고라자산운용의 마이크 첸 포트폴리오 관리담당 이사는 지적했다. 그는 “탈탄소는 1980년대 인터넷에 비교할 정도로 거대한 전환”이라며 “따라서 올해 펀드 수익률이 저조하다해도 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구조적인 테마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