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정원 가꾸듯 댓글 관리를 /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보기 드문 광경이었고, 찍기도 힘든 사진이었다. 소나기눈이 내리던 18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한 시민이 노숙인에게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지갑에서 5만원까지 꺼내 주는 장면. <한겨레> 백소아 기자의 이 사진기사에 독자들이 남긴 댓글도 훈훈했다. “정읍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 먹다가 눈물이 납니다.”(hoam****), “부끄럽습니다. (…) 노숙인은커녕 늙고 외로운 내 부모조차 짐스러워하는 나 자신과 비교돼서….”(star****), “기자는 사실 큰일을 저지른 거다 (…) 제 살기 바빠 척박해진 가슴들에 훈풍을 불어넣었으니 어찌할 거냐 이거”(gkdo****), “나도 꼭 저렇게 한번은 해봐야지, 볼수록 찡한 사진”(drag****). 한 사람이 얼마나 큰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댓글을 읽다 보니 느낄 수 있었다. 그 흔한 ‘악풀’도 드물었다. 이 기사는 페이스북에 26일까지 1만4000회 이상 공유되는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독자를 찾아갔다.
디지털 시대에 언론과 독자는 이렇게 댓글이나 공유를 통해 쌍방향으로 소통한다. 언론이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독자와 더불어 공감하고, 비판하고, 재해석하는 ‘공동 생산자’가 된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댓글조작 사건이 연이어 불거진 것도 댓글이 널리 읽히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한국리서치 조사(지난해 11월27~30일, 18살 이상 남녀 1000명)를 보면,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할 때 댓글을 읽는다는 응답이 82%에 이르렀다. 하지만 댓글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아, 88%가 악성 댓글이 “심각하다”고 봤다.
한겨레는 누리집과 포털 등 매체별로 댓글창을 운영하고 있다. 좋은 댓글도 달리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많다. 특정 집단·지역·인물에 대한 혐오표현, 과도한 정파적 비방, 언론사나 기자를 원색적으로 공격하는 댓글이 자주 보인다. 이런 댓글은 기사의 본뜻을 왜곡하고 읽는 이들을 화나게 해 결국 사회의 신뢰 수준을 떨어뜨린다. 특히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은 ‘군중 검열’이란 언론자유 위축 효과를 부르기도 한다.
해외 주요 언론은 댓글도 자사의 콘텐츠임을 분명히 하고, 댓글난이 청정한 토론장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 첫걸음은 댓글 관리 원칙을 세워 독자와 시민에게 투명하게 알리는 일이다. 영국 <가디언>, 미국 <뉴욕 타임스>의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보면, 어떤 댓글을 우대하며 어떤 댓글은 삭제하는지 명확히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언론사가 이런 댓글 정책을 누리집에 게시하고 있다. 원칙을 세우고 마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다. 뉴욕 타임스는 몇년 전만 해도 일부 기사에만 댓글창을 열어두었다. 댓글이 달려도 곧바로 노출하지 않았다. 이후 인공지능 기반의 댓글 여과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댓글을 달 수 있는 기사 수를 차츰 늘려갔다. 가디언도 논쟁이 과열되거나 혐오표현이 난무할 것 같은 기사에는 댓글난을 두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하지만, 여러 문턱을 두어 댓글 작성자의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관리하지 못하는 댓글은 노출하지 않는다”는 자세이다.
한겨레는 운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누리집 기사의 댓글 관리를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다. 악성 댓글은 어느 정도 걸러지지만, 한겨레의 원칙과 필요에 따른 체계적 관리와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독자와 대화하는 창으로서 댓글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한겨레는 가디언을 모델 삼아 가치 있는 저널리즘에 바탕을 둔 독자·주주 후원제도를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독자와의 접점을 직접 관리하고, 수준 높은 참여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포털을 거치지 않고 누리집에 직접 들어와 뉴스를 읽는 독자는 애정이 많은 독자이기에 한층 배려를 해야 한다. 질 좋은 댓글을 골라 보여주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독자 의견을 콘텐츠 제작에 반영해야 한다. 댓글창은 정원이다. 자주 잡초를 뽑고 거름을 줄 때 알록달록 예쁘게 피어난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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