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성폭력 '100인위 폭로' 20년.."'조직 우선' 강조 여전"

정연주 기자 2021. 1. 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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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개인 일탈 아닌 조직문화가 성차별·성폭력 용인"
여성 인권·성인지 감수성 제고 '부수적 가치 취급' 자성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으로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왼쪽부터 류호정 의원, 강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 2021.1.2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지난 2000년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는 과거 은폐됐던 진보진영 내 성 비위를 공론화한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100인위는 대학 총학생회, 노동조합, 사회운동 단체 등 성 비위 실태와 가해자 실명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들의 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과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법적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진보진영은 여전히 반복된 성 비위로 지탄을 받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18년 비서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정치 생명을 끝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지난해 여성공무원 추행으로 자진 사퇴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비서 성추행 혐의를 받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당보다 성평등과 여성 인권에 주목했던 정의당에서조차 김종철 당대표의 성추행 가해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집단보다 이 문제에 천착해 온 진보진영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대체 왜 아직도" 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의당 내부에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 문화의 혁신이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는 분위기다.

강은미 원내대표는 이날 "정의당의 부단한 노력에도 조직문화를 바꾸지 못했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철저하게 쇄신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배복주 부대표도 "이번 사건을 단순하게 개인의 일탈 행위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며 "조직문화가 성차별, 성폭력을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돌아봤다.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추모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제작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망 직전 박 시장이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현수막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20.7.1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나아가 성 비위는 유독 진보진영 내에서 초대형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두고 고민이 깊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치권 전반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도 문제지만, '조직 보위론'으로 대표되는 과거 진보진영 운동권 위계질서 문화가 여전히 진보진영 의식 저변을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뉴스1과 통화에서 "진보 진영의 주축 멤버인 운동권 세대가 지닌 가부장적 조직 문화는 여전하다. 과거 노동 해방이나 독재 해방 등의 목표지향적인 문화가 여전히 잔존해 있다"며 "즉,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 진보와 보수 프레임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권력형 성 비위 사건을 개선하기 위해선 사회조직문화의 재정비를 개혁 과제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사회의 성폭력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남성중심적이고 위계적인 사회 문화가 그 원인"이라고 우려했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 당시 민주당이 피해자를 피해자로 부르지 않고 '피해호소인'이란 애매모호한 호칭을 써 2차 피해를 가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대의나 조직을 우선하는 운동권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운동으로 이름을 알린 당내 여성 의원들이 침묵해 남성 중심적인 정치권 내에서 기득권화한 여성 정치인의 한계도 보여줬다.

박 전 시장 측에 피소 사실을 유출한 의혹을 받았던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제가 서울시 젠더특보와의 전화를 통해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고 이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저의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날 박 전 시장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판단한 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첫 사과를 한 것이다.

남 의원은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과 관련해서도 "정치권이 피해자의 피해를 부정하는 듯한 오해와 불신을 낳게 했다"며 "저의 짧은 생각으로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됐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그동안의 숱한 진보진영의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나 성찰 노력이 선거 승리나 집권 등 정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부수적·장식적인 가치로만 취급당해온 게 아니냐는 자성도 나온다.

다만 정의당이 이번 김 전 대표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 및 일상 회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신속하게 가해자 징계 등에 착수한 것을 두고 적절한 대응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은 그간 진보진영의 개선 노력이 어느 정도 진전을 가져왔음을 의미한다는 평가다.

jy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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