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점선의 연결] 들어보셨어요, 입양인의 말?

한겨레 2021. 1. 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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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점선의 연결]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생후 30개월 때 입양된 강소정은 “눈을 맞추고 안으면 생모도 아이도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입양기관 관계자나, 그 말만 듣고 눈을 돌린 생모나, 아이가 빨리 오기만 하면 모든 상처가 지워질 거라고 믿는 입양 부모나 모두 이리저리 옮겨질 아이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희경 ㅣ 작가·<이상한 정상가족> 저자

“이미 한차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16개월 입양아동이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던 이달 초순, 아동보호체계 진단을 위한 국회 긴급 간담회에서 국내입양인연대 민영창 대표가 했던 말이다.

전례 없이 입양이 전국적 관심사가 되어버린 이달 내내 한살 때부터 입양인으로 살아온 민 대표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뭣이 중헌디’라는 한때의 유행어처럼, 입양이라는 복잡한 관계에서 누가, 왜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를 잊지 말라는 일침처럼 들렸다.

불가피하게 친생부모가 키울 수 없게 된 아이에게 영구적 가족을 찾아주는 입양에서, 아이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선택권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입양아를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부르며 아이와 친생부모의 이별은 없는 일처럼 취급하고, ‘행운아’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는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마음을 물으러 성인이 된 입양인들을 만났다.

민 대표는 친생부모와의 분리는 “몸이 기억하는 상처”라고 했다. 아기가 뭘 알겠나 생각하기 쉽지만, 분리는 학대 못지않게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생후 7개월 무렵 입양돼 평탄하게 자란 김하늘은 중학생 때 가족과 잠깐 떨어져 지내는, 별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온몸의 세포가 덜덜 떨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유별난 공포를 겪었다. 그 이유를 몰랐는데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제야 흩어진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로선 친생부모와의 분리는 버림받는 것이고 온몸에 화상을 입는 듯한 충격이다. 화상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상처는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곱살 때 입양된 박세준은 20대가 되어도 해소되지 않는 분리불안과 함께 “엄마가 버릴 만큼 내가 나쁜 아이였나?” 하는 생각으로 성장 과정 내내 고통스러웠다. 존재 자체를 거절당했다는 아픔과 자기 불신은 입양인을 힘들게 하지만, 입양 가족은 ‘자연스러운 가족’과 똑같다는 믿음 앞에서 입양인의 감정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 되레 친생부모의 양육 포기와 입양을 감사해야 한다는 암암리의 압박에 자기감정을 지우려 노력해야 한다. 입양을 말하면 종종 차별받거나, 상실을 말하면 ‘실패한 입양인’이라는 비난을 듣기 일쑤다.

입양인에게 가장 절박한 질문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포기되었는가”이다. “버릴 만해서 버려졌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헤어졌지만 소중한 존재로 다루어졌는지”를 궁금해하고, 함부로 다뤄지지 않았음을 알게 될 때 상실을 안정적으로 애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입양인들은 정인이의 경우처럼 빠르게 결정되는 입양에 반대한다. 입양기관과 부모들은 ‘초기 애착 형성’을 이유로 ‘더 빠르게’를 말하지만, 입양인들은 부모의 양육 편의만을 고려한 입장 아니냐고 묻는다.

생후 30개월 때 입양된 강소정은 “눈을 맞추고 안으면 생모도 아이도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입양기관 관계자나, 그 말만 듣고 눈을 돌린 생모나, 아이가 빨리 오기만 하면 모든 상처가 지워질 거라고 믿는 입양 부모나 모두 이리저리 옮겨질 아이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는 자신과 연결되어 있던 주체에게 충분히 안겨 있어야 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넘치도록 미안하단 말을 들어야 하고,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받아야 한다. 입양될 아이가 빠르게 빠르게가 아니라 느리고 천천히, 신중하게 갈 길이 정해져도 괜찮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겠지만 많은 입양인의 생각이다.”

생모와의 사소한 연결고리 한두개만으로도 입양인은 자기 삶의 시작점을 긍정하고 그 힘으로 살아간다. 강소정은 생모에 대해 “며칠 모유를 먹였을 거다”라는 흐릿한 정보밖에 모르지만, 그 조각난 단서만으로도 깊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세 아이를 입양했고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이설아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슬픔을 힘겹게 소화하는 첫째와 둘째의 곁을 지키면서, 셋째를 입양할 때에는 생모와 아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만나는 개방입양을 결정했다. “내 아이의 삶에서 중요한 누군가가 사라지기를 더는 원하지 않는 마음”에서였다.

개방입양으로 그는 입양부모가 된 지 9년 만에 “입양 3자가 모두 행복한 입양”을 처음 경험했다. 생모를 만나니 아이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였고, 생모는 안심할 수 있었고, 함부로 다뤄지지 않은 아이는 상황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한번은 셋째가 신생아일 때 생모와 손을 포개고 있는 사진을 첫째와 둘째가 보더니 “나도 이런 사진을 갖고 싶다”고 목 놓아 운 일이 있다. 생모에게 안겨보기라도 했다는 기억과 자료를 갖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를 그는 절감했다고 한다.

김하늘은 “내 삶의 시작에 대한 정보를 알기 전까진 마치 블랙홀이 나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느낌인데, 생모와 연결되어 진실을 알고 나면 고통스러워도 결국 힘을 얻고 온전한 나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진실의 힘”이라고 말했다.

내가 만난 입양인들은 대체로 입양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린 사람도 있다. 보육원에 있는 그를 티브이에서 본 부모는 먼 길을 달려와 딱 두번 만나고 그를 입양했으나, 집에서는 폭력이 빈발했고 주변에선 “그럴 리 없다”며 아무도 돕지 않았다. 그는 운 좋게 살아남은 ‘정인이’였다.

부모가 ‘선하고 훌륭한 일’이라는 이미지에만 이끌려 입양을 선택하면 정인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처럼 구렁으로 미끄러지는 건 순식간이다. 입양인들은 “입양 제한 사유에 ‘구원자적 목적’을 넣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입양은 한 아이를 구원하기 위해 “너는 나 없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이루고 싶어서 “나는 너 없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환상을 깨는 성찰, 상처받은 아이를 키우는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내가 만난 입양인들의 생각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이를 중심에 놓는 입양은 더 많은 입양 알선을 추구하는 민간기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생모는 대부분 위기에 내몰려 홀로 출산하며 곤경에 빠진 어린 여성들이다. 누구와 상담하고 어떤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아이의 평생이 좌우된다. 제도를 일거에 바꿀 수 없다면 입양 동의 전 친생부모의 상담과 아이의 보호만큼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 수십년간 민간에 내맡긴 제도 탓에 ‘입양 3자’ 모두가 실패하는 ‘정인이들’의 비극은 이제 끝내야 한다. (※단체 대표들 외에 입양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다.)

▶ [기고] 아동학대→공분→대책…우리는 왜 수년째 ‘쳇바퀴’일까 / 김희경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76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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