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에 대한 국가·기업의 책임-'노동존중' 사회를 위해 [기고]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1. 1. 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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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동자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후인 1986년 2월20일 ‘제23차 정기 대의원 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유인물 150여 부를 동료 노동자와 제작·배포했다. 이후 같은 해 5월20일부터 7월2일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당시 부산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돼 조사받았다. 고문도 당했다.

회사측은 김진숙과 현장 노동자들과 분리했다. 김진숙이 두 번째 대공분실을 다녀온 이후에는 현장직에서 사무직으로, 세 번째 다녀온 뒤에는 직업훈련소로 배치전환했다. 김진숙은 시정을 요구하며 영도조선소에서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경찰, 회사관리자 등은 집 대문을 막아서며 출근을 막았다. 회사는 1986년 7월14일 어용노조비판 및 신일금속 노사분규 개입, 무단결근 등을 이유로 김진숙을 징계해고했다.

리멤버 희망버스 기획단 주최로 25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김진숙 복직! 해고 금지! 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 중 해고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발언하고 있다. 기획단은 이날 김진숙 해고 35년, 청와대 단식농성 35일을 맞아 전국에서 시민과 노동자 1000명이 연대단식에 나선다고 말했다. 또 오는 1월 30일 3500명의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방역수칙을 지키며 촛불을 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재발된 암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민주화 위원회)는 2009년 11월2일 해고 등이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다. 2020년 9월 복직을 재권고했으나 사측은 현재까지 거부하고 있다. 한편, 김진숙은 2011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 반대 타워크레인 고공농성(309일) 및 ‘희망버스 운동’등에 함께 했다.

현재 김진숙은 회사에 복직 및 이에 따르는 퇴직금 등의 지급을 요구한다. 회사측은 해고 기간 동안 급여(위로금)와 퇴직금을 지급(이하 통칭해 ‘금전보상’)하는 내용을 포함해 복직을 합의하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며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성립(형법 제355조 제2항)하고, 업무상 배임죄는 가중처벌(제356조)한다.

형법상 배임죄의 객관적 구성요건 중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에 관해 대법원은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 사이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라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은 업무상 배임죄와 관련해 ‘경영상의 판단’의 경우 배임의 고의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문제가 된 경영상의 판단을 내리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회사)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해고무효확인 소송 등에서 패소 확정된 노동자와 회사가 합의한 사례 등 최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장기분쟁 사안 관련 합의 사례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다.

- 지난 2018년 7월 KTX 해고 노동자들은 대법원에서 근로자 지위확인 등 청구소송에서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사회적 합의로 12년 만에 정규직으로 복직했음. 심지어 위 복직 합의 전 해고자들이 회사에 반환해야 할 금전 문제와 관련하여 회사가 종교계의 중재를 받아들여 일부(5%)만을 반환받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기도 했음.

- 지난 2019년 4월 국내 최장기 투쟁사업장인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대법원에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복직투쟁(4464일)을 이어온 콜텍지회 조합원 25명과 합의했음.

- 1982년 삼성테크윈에 입사해 노조설립을 주도하다 1995년 해고된 김용희 노동자가 2020년 5월 삼성의 공식 사과, 명예복직, 피해배상을 요구하며 강남역에서 고공농성을 한 지 355일 만에 합의했음.

-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통보로 해직됐던 전교조 전임자 34명은 2020년 9월 복직 및 최대 4년 치 임금을 지급 받기로 합의했음.

철도노사가 KTX 해고 승무원 복직을 합의한 2018년 7월21일 12년째 투쟁을 이어온 KTX 해고 승무원들이 서울역 플랫폼 중앙계단에서 투쟁 해단식 기자회견을 하며 웃고 있다.연합뉴스

위와 같이 노사가 합의한 사안이 업무상 배임죄로 의율된 선례가 없다. 그럼에도 이 사안에서 한진중공업이 금전보상을 하며 김진숙 지도위원을 복직시킬 경우 위 대법원 판례에서 말하는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할까. 전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여러 층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별해 보면, ①합의의 동기 및 경위와 관련하여, 2009년 이후 최근까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부산시의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의원 등의 수차례 복직 권고가 있었으며, 이는 경영진의 사적인 이익추구나 기타 부적절한 동기에서 추진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②합의 내용과 관련하여 보더라도 이는 개별 노동자의 복직 여부와 조건 등 기업의 인사노무에 관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사용자에게 상당한 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으로, 현 경영진이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면 이러한 경영상의 판단은 일응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③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관련하여, 한진중공업은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자산매각 등 유동성 확보 노력으로 흑자로 전환하였고 최근까지 영업이익 기조를 유지하면서 현재 매각절차 진행 중이나, 실적개선과 주가상승, 입찰경쟁 등으로 매각대금이 당초 예상금액(5000억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노동자 1인에 대한 복직 합의가 기업의 경제적인 상황을 악화시킬 상황은 전혀 아니다. ④손실발생과 이익획득의 개연성에 관하여, 김진숙에 대한 부당해고 관련 과거사 정리는 매각을 앞두고 조선업의 사업계속과 고용유지에 관한 지역사회의 우려, 노사갈등과 사회적 논란 내지 분쟁을 조기해소 함으로써 오히려 기업 이미지 제고 등 유·무형의 신회를 회복할 수 있다. ⑤백보 양보하여, 사용자가 법적으로 지급의무가 없는 금전이라 하더라도 여러 사정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여 지출했다면 경영상 판단에 따라 지급한 것은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회사가 자사의 사회적 이미지 제고 등의 목적으로 기부행위를 하거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여 지출하는 경우 등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여지는 없으며, 오히려 기업 경영 이미지에 긍정적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

시민사회·종교단체 대표 233명은 지난 5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부산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폭력과 부당 해고를 당하고 일터로부터 35년 동안 쫓겨난 노동자 김진숙의 명예 회복·복직은 정부·사회·기업의 책무”라고 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민주화보상법)에 따르면 ‘민주화운동’이란 1964년 3월 24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 및 가치의 실현과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

김진숙의 경우 위 위원회의 진정 조사에 따라 분명한 국가폭력과 기업의 유착에 따른 부당해고임이 밝혀졌다. 자율적 노사관계에 경찰 등이 불법적으로 개입하여 연행하고 고문 등을 가한 명백한 국가에 의한 불법행위이고, 기업과의 협력 하에 해고, 상이, 구속 등이 이뤄졌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기업은 불법행위에 따른 원상회복 차원의 복직과 미지급한 임금 등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위원회는 해고, 상이 등이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해 김진숙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했다. 따라서, 불법행위에 따른 원상회복, 회복적 정의 차원에서 복직, 그 기간 동안 받지 못한 금원을 국가와 기업이 보상 내지 배상하는 것은 최소한의 조치로서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물론 민주화보상법 제5조의 4 제2항에도 복직 등의 권고에 대해 기업은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귀하여 노력’할 의무를 질 뿐이지만, 민주화운동법 및 김진숙에 대한 민주화운동관련자 인정 취지 등에 비추어 볼 때 국가 공기관인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 사측이 기본적인 헌법과 법률의 가치를 존중한다면 마땅히 복직 등을 수용함으로써 원상회복, 회복적 정의의 길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국가 공권력의 부당 불법, 편파 개입이 드러나는 부당해고의 경우에는 복직과 함께 원상회복에 준하는 손해배상을 강제할 수 있는 민주화보상법의 개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청와대를 목적지로 도보 투쟁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투쟁 이틀째인 지난달 31일 오후 경남 밀양시 삼량진역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권도현 기자

결론적으로 과거 경찰 대공분실(보안분실)이 관여하여 김진숙을 불법연행하고 고문을 가한 행위에 대해서는 명백한 국가의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의 책임 역시 물어져야 할 것이다. 별도로 경찰 등 공권력의 개입으로 부당해고한 것이라면 소멸시효논란은 별론으로 하고 국가와 기업이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회사가 김진숙을 금전보상을 하며 상징적으로 복직시키더라도, 민주화운동법 등의 취지에 따라 사용자의 의무이행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므로 현재 은행관리사인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 사측의 주장인 업무상 배임 행위는 설득력이 없다. 민주화운동법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하의 불법적 행태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마땅히 이를 위한 결자해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사는 해결되지 않는 한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기업과 국가공권력에 의한 것이든, 개인에 의한 것이든, 그 어느 것도 기본권침해가 있었다면 이에 따른 가해자의 처벌, 진상규명, 명예회복, 배상 등이 따라야 하는 것은 너무 자명한 2021년 헌법이 명하는 기본질서이다.

그 기본이, 상식이, 정의가 조속히 실현되기를 바란다. 특히 김진숙은 이런 35년간에 이르는 부당해고 기간을 거쳐 현재 재발된 암수술까지 마치고 긴 투병을 거쳐야 하는 환자인 상태다. 국가든 기업이든 더 이상 그의 권리 회복, 명예회복을 사익적으로, 정략적으로 사고해서는 안된다. 그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대표적인 사회운동가로 그 기여가 남다른 이다. 그가 늘 뒤전으로 미뤄왔던 그의 정당한 권리는 이제 그만 회복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진정한 ‘노동존중’이 시급한 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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