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지방관리의 청렴함 기린 순천 팔마비 보물된다

장재선 기자 2021. 1. 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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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지방관리의 청렴함을 기린 전남 순천 팔마비(順天 八馬碑)가 보물이 된다.

17세기 건축 원형을 지켜온 충남 공주 갑사 대웅전(甲寺 大雄殿)과 경북 의성 대곡사 범종루(大谷寺 梵鍾樓)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순천 팔마비는 1281년(충렬왕7) 이후에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승평부(지금의 순천)에 건립한 비석이다.

문화재청은 "17세기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보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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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팔마비 전경. 문화재청 제공.
충남 공주 갑사 대웅전 정면.
경북 의성 대곡사 범종루 전경.

17세기 건축 ‘공주 갑사 대웅전’‘의성 대곡사 범종루’도 보물 지정예고

고려말 지방관리의 청렴함을 기린 전남 순천 팔마비(順天 八馬碑)가 보물이 된다. 17세기 건축 원형을 지켜온 충남 공주 갑사 대웅전(甲寺 大雄殿)과 경북 의성 대곡사 범종루(大谷寺 梵鍾樓)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이들 3건의 문화재에 대해 30일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한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순천 팔마비는 1281년(충렬왕7) 이후에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승평부(지금의 순천)에 건립한 비석이다. 이런 사실은 고려사 열전(高麗史 列傳)에 기록돼 있다.

승평부에서는 수령이 교체되면 말 8필을 기증하는 관례가 있었다. 최석은 승평부에서 기증한 말을 타고 비서랑의 관직을 받아 개성으로 떠난 후 자신이 기증받은 말과 자신의 말이 승평부에 있을 때 낳은 망아지까지 돌려보냈다. 이후로 승평부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수령에게 말을 기증하는 폐단이 사라졌고, 읍민들은 최석의 청렴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은 고려말 처음 건립된 이후 1300년대 초반 쓰러졌으나 다시 세워졌고, 이후 정유년(1597년, 선조 30)의 병란으로 완전하게 훼손됐다. 그러나 1616년 부사로 부임해 온 이수광에 의해서 1617년 다시 건립됐고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온전하게 전해졌다. 팔마비에 새겨진 글씨 ‘八馬碑’는 진사 원진해(元振海)가 썼다. 뒷면에 기록된 음기(陰記)는 이수광이 짓고 동지사(同知事)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썼다.

13세기의 청렴한 지방관을 기렸다는 점, 17세기에 중건한 비의 실물이 현전하여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이 역사, 예술, 학술 가치가 충분하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공주 갑사 대웅전은 정유재란 이후 갑사에서 가장 먼저 재건된 건축물 중 하나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대체로 원형을 유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집의 구성이다. 정면이 5칸이면서 맞배지붕을 한 사례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정면과 배면 공포의 형식이 동일하고, 기둥 간격이 정면 중앙 3칸이 12척, 측면과 나머지 주칸은 8척으로 나타나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간결하게 배치하고 있다.

연혁과 유래를 알 수 있는 각종 기록과 유물이 잘 남아 있고, 평면구성과 공포의 구성수법, 상부 가구와 닫집 등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17세기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보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의성 대곡사 범종루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병화로 전소돼 17세기 중·후반인 1644년에서 1683년 사이에 중창됐다. 이 같은 내용은 ‘대곡사 창건 전후 사적기’를 통해 전해진다.

정면 3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 건물이다. 현존하는 누각 건축 중 17세기 전반의 것은 대부분 3칸 평면을 가지고 있고, 이후 누각 평면이 3칸에서 5칸, 7칸으로 점차 확장돼 가는 경향을 보인다. 대곡사 범종루는 기존에 남아 있는 누각 건축 중에서도 이른 시기인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공포의 첨차와 살미의 형태, 창방을 비롯한 다수 부재의 의장적 요소 등에서 조선 중·후기의 건축적 특징이 잘 남아 있다. 특히, 중앙칸에 주간포를 생략하고 화반을 대체한 절충식 양식이 주목된다. 범종루는 의성지역의 불교사찰이 부흥하기 시작한 17세기의 양식적 변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누각 건축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장재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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