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수목원 산책길] 자작나무 씨앗의 비산

입력 2021. 1. 26. 14:00 수정 2021. 1.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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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이 관심을 모읍니다.

꽃이 없어도 잎이 없어도 고스란히 드러난 나무의 수형, 남아 있는 열매, 아름다운 나무 수피의 색깔 또는 그 색들의 대비, 마른 풀잎의 질감 등을 잘 조화시켜 겨울만의 느낌 있는 정원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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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심겨진 자작나무

겨울 정원이 관심을 모읍니다. 꽃이 없어도 잎이 없어도 고스란히 드러난 나무의 수형, 남아 있는 열매, 아름다운 나무 수피의 색깔 또는 그 색들의 대비, 마른 풀잎의 질감 등을 잘 조화시켜 겨울만의 느낌 있는 정원을 말합니다.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노랗고 붉은 줄기를 가진 노랑말채와 흰말채, 흰 꽃 덩어리가 그대로 말라 달려 있는 나무수국, 붉은 열매와 살짝 단풍빛으로 잎이 변한 남천,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팜파스글라스 등이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초록을 항상 주는 상록의 나무들과 어울어져 특별한 경관을 만듭니다. 지금 그런 겨울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계시다면 이미 식물 고수이십니다.

자작나무 수피

겨울 정원의 식물 가운데서 우선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자작나무입니다. 올곧지만 고집스럽지 않고, 큰키나무이나 너무 굵어 부담스럽지 않고, 연한 연둣빛 새순을 내어 놓을 줄 알고, 가장 먼저 겨울을 준비하며 과하지 않은 단풍빛을 만들어냅니다. 하얀 수피에 싸여 줄지어 서 있는 자작나무만 모아 심어도 그대로 숲이 되며 정원이 되어 사계를 담습니다. 사실 자작나무는 진정한 겨울 나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유명한 자작나무숲을 비롯하여 곳곳에 이 나무를 심고 있지만 본래의 고향은 북쪽입니다. 백두산을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숲이 시작되는 초입에 흰 가루가 묻어날 듯 희고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을 만나셨던 기억이 있으실 듯 합니다. 눈처럼 흰 자작나무 숲을 만나보면 이 나무를 두고 숲속의 귀족이요, 가인(佳人)이며 나무들의 여왕이라고 하는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따뜻한 남쪽 도시로 내려온 자작나무들은 제 고향의 맑고 쨍하도록 차가운 겨울을 만나지 못하여 때론 때깔을 잃기도 회백색으로 변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작나무 열매

자작나무는 풍매화로 곧추섰던 암꽃이 결실하면서 손가락 모양의 열매가 되어 늘어집니다. 고향에서의 자작나무 열매들은 겨울을 보내고 날씨가 조금씩 풀어질 때 비로소 벌어져 그 속에 있던 씨앗들은 사방으로 비산하여 눈 쌓인 어딘가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가, 눈이 녹기 시작하면 녹아 흐르는 그 길을 따라 미끄럼을 타듯 설원으로 이동하여 더 멀리 멀리 새로운 세상으로 퍼져나가지요. 대견한 자작나무는 혹독한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어냈지만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으며, 그 상황을 오히려 슬기롭게 이용하여 보다 큰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유난히 매서웠던 겨울 추위, 겪어 보지 못한 어려운 한 해를 보낸 우리입니다. 여전히 막막하지만 그래도 수목원 산책 길에서 만나는 대기의 기운에는 저만치 어디선가 봄은 오고 있다고 느껴지며 세상속에서도 희망의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 고난의 끝에는 기존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가진 세상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자작나무 씨앗들이 추운 눈밭을 타고 나가 새 지평을 열 듯 우리의 여정도 아름답게 이어지길 고대해 봅니다.

수목원 산책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지면은 사라지지만 저는 수목원 산책을 계속하며 살듯합니다. 그 길목 어딘가에서 우연히라도 반갑게 만나 뵙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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