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8090 아날로그 만화의 추억..'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백봉삼 기자 입력 2021. 1. 26. 13:18 수정 2021. 1. 2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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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사 사회·정치·경제·문화적 시대정신으로 풀어..작품 뒷얘기도 재미

(지디넷코리아=백봉삼 기자)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어느 순간 디지털 ‘웹툰’이 아날로그 ‘만화’를 대신하게 됐다

신간을 기다리며 만화방이나 책대여점에 드나들던 기억은 이제 먼 추억이 돼버렸다. 설이나 추석 같은 긴 명절을 앞두거나 여름휴가 때 그동안 보고 싶었던 만화책을 잔뜩 빌려와 읽던 기억 역시 2000년대 중반 정도에 끝이 났던 것 같다.

현재 30대 이후라면 비슷한 기억과 추억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한번쯤은 종이로된 만화책 특유의 질감과 잉크 냄새를 기억하며 만화카페를 찾거나, 서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옛 추억의 만화를 다시 구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네이버 시리즈나 카카오페이지 같은 웹툰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90년대 만화를 모바일로 보는 경우도 많을 테고.

책 자료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만화가 그리워지는 요즘 반가운 책이 출간됐다. 바로 문화콘텐츠학 박사이자 만화연구가인 장상용이 쓴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1980~1999’(장상용, 한국만화영상진흥원)다. 이 책은 표지나 제목에서 느껴지는 딱딱함과 달리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와 기록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한국만화사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시대정신으로 읽어냈다.

민주화의 싹이 이제 막 틀 무렵인 1980년대는 기자가 아직 만화책을 적극 소비할만한 연령이 아니어서 책에 등장한 작품과 작가가 낯선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80년대에 태어나 80~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만으로도 책에 나오는 익숙한 이름의 작가들이 반가웠고, 그들의 작품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 당시의 시대와 분위기, 사회적인 억압된 분위기 가운데서도 희망을 꿈꾸려는 작가들의 정신과 노력들이 이 책을 통해 느껴져 가슴 벅찬 감정도 차올랐다. 분명 어둡고 아프고 딱딱한 문장들의 연속인데도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돋보였다. 아마 각 작가와 작품들이 품고 있는 뒷얘기를 잘 녹이고, 80~90년대 만화 출판 시장의 생생한 현장을 책 속에 한땀한땀 담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개되는 각 만화 작품들의 짤막한 이야기도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1980-1999

지금은 웹툰이 만화를 대체하고, 이 작품들이 드라마나 영화로도 제작돼 K글로벌 콘텐츠로 스포트라이트와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80~90년대 만화 시장과 위상은 지금의 웹툰과 크게 달랐다.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에 따르면 정부의 날카로운 검열 가운데서 표현과 장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는 어려운 작업 환경과, 만화를 수준 낮은 무엇으로 보는 사회적 시각이 존재했다. 독자들을 만나기까지 만화책이 좋은 출판사를 만나 체계적으로 유통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가운데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채무 관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문제도 발생했다. 공장처럼 단기간에 많이 찍어내지 못하는 작가들은 낙오자가 되고 도태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지금은 누구나 노트북과 스마트 패드 등의 장비를 갖추고 좋은 아이디어와 그림 솜씨만 있으면 온라인으로 자신의 작품을 등록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 높은 상금을 내건 웹툰 플랫폼들의 공모전 또한 끊이질 않는다. 누군가의 취향과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내 작품을 인정해줄 수 있는 독자들을 찾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없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시대의 차이가 더욱 극명히 느껴졌다.

만화책 자료사진(제공=픽사베이)

이 책에는 이현세, 박봉성, 방학기, 장태산, 김수정, 이희재, 황미나, 이진주, 윤태호 등 이름난 8090년대 인기 작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성공기뿐 아니라 실패담 등 어둠과 빛이 공존했던 시대를 살아간 그들의 열정이 묻어난다. 지금은 유명하고 실력있는 만화작가로 존경 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 만화를 베끼거나 공장 형식의 출판 생태계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어려움도 소개된다.

사실 기자는 80, 90년대를 대부분 일본만화를 보며 자랐다. ‘슬램덩크’, ‘드래곤볼’을 비롯해 학원물인 ‘상남2인조’, ‘반항하지마’, ‘오늘부터 우리는’, ‘엔젤전설’과 같은 말도 안 되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던 작품들이 더 많이 기억난다. 순정만화로는 ‘꽃보다 남자’를 끝까지 읽었다.

반면 이 책에 소개된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 ‘신의 아들’(박봉성), ‘간판스타’(이희재) 등의 작품은 낯설다. 그나마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등은 TV 만화를 통해 보게된 경우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90년대 연재를 시작해 인기를 끌었던 '짱'(임재원)이나 '열혈강호'(양재현·전극진), '키드갱'(신영우) 등과 같은 작품들은 책에서 빠져있거나 짧게만 언급돼 아쉬움을 준다.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1980~1999

그럼에도 위에 언급했듯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1980~1999’는 만화를 사랑했던, 지금도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왠지 모를 추억과 재미를 안겨준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타서 매주 문방구로 달려가 ‘아이큐 점프’나 ‘소년 챔프’를 사러 갔던 기억, 때론 만화보다 그 속에 들어있던 연예인 브로마이드나 사은품을 갖고 싶었던 ‘속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만화책을 통해 8090년대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을 알게 되는 유익함도 있고, 만화책 못지 않은 흥미와 추억까지 살아나게 해주는 신기한 책이 바로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1980~1999’다. 책 표지와 제목은 교본에 가깝지만, 재미로 따지면 대중서로도 손색이 없다.

백봉삼 기자(paikshow@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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