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손자 공짜 급식'과 재난지원금의 차이

천관율 기자 입력 2021. 1. 26. 11:44 수정 2021. 3. 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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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는 다 똑같이 준다는 의미의 보편이 아니라, '필요'가 발생하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보편이다. 재난을 계기로 국가에 대한 중대한 인식 전환을 만들어내자는 주장이 나온다.
ⓒ시사IN 이명익1월13일 서울 중림동 거리에 소상공인 3차 재난지원금에 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소상공인 대상 3차 재난지원금이 집행되는 중이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이미 ‘4차 재난지원금’으로 쏠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고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 재난지원금을 만지작거린다. 지난해 5월 1차 재난지원금이 보편 지급이었다.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고 1인 가구는 40만원, 4인 이상 가구는 100만원을 줬다. 다만 경기부양과 소비 진작이 중요한 명분이라,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든 이후에 검토한다. 기본소득을 핵심 의제로 내세우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번에도 보편 지급을 강력히 주장한다.

정부는 반대 기류다. 직접 피해 계층에 두터운 지원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장서 있기는 하지만, 기재부 관료들만의 분위기는 아니다. 1월7일 정세균 총리는, 보편 재난지원금을 촉구하는 이재명 지사에게 보내는 답장 형식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코로나19가 주는 고통의 무게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고통에 비례해서 지원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보편이냐 선별이냐. 한국 사회가 10년 동안 되풀이해 다뤄온 익숙한 질문이다. 한국 정치의 기념비적인 복지 논쟁으로 평가받는 학교 무상급식 논쟁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불붙었다. 급식 논쟁 이후로 ‘보편적 복지’라는 용어가 익숙해졌다. 이때부터 보수는 선별 복지, 진보는 보편 복지를 내세운다는 게 공식처럼 통용됐다.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논쟁 때도 기재부는 선별을 주장한 반면, 민주당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보편 지급을 주장해 관철했다. 이 역시 ‘민주당은 보편 복지 세력’이라는 인상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벌어진 일에 대한 놀랍도록 빗나간 요약이다. 선별이냐 보편이냐. 보수는 선별, 진보는 보편.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이 구도는 실제 현실과 다른 것은 물론이고 보편적 복지와도 상관이 없다. 이상이 교수(제주대)는 보편적 복지국가 담론을 이끌어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을 ‘보편 지급’이라고 부르는 게 엉터리 용어라고 단언한다. “그건 보편 지급이 아니라 획일 지급, 무차별 지급이라고 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와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은 철학적으로 오히려 충돌한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보편적 복지라는 말의 의미를 따져봐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2010년 무상급식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 밥을 주려고 세금을 쓰는 게 맞느냐.” 2010년 지방선거의 민주당 강세 속에서도 가까스로 생존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이 직관적인 논리를 내세워 전면 무상급식 반대론을 주도했다. 그는 무상급식 대상을 소득에 따라 선별하자는 주장을 주민투표에 부쳤다. 2011년 오 시장은 주민투표에서 패배해 시장직을 내려놓았다. 무상급식 논쟁은 보편적 복지 개념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첫 승리였던 동시에, 보편적 복지에 대한 오래 지속될 오해를 낳은 출발이었다.

학교급식은 소득을 따지지 않고 학생이면 누구나 무상으로 준다. 이 첫 경험은 ‘보편적 복지란 다 똑같이 주는 것’이라는 인상을 각인시켰다. 이것이 오래 지속된 오해다. 간단한 비교를 해보자. 건강보험은 모든 가입자에게 같은 액수의 의료비를 주는 게 아니다. 아파서 병원에 간 사람에게, 병원을 이용한 만큼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준다. 즉, 아픈 사람만 골라서 필요한 만큼 차등해준다. 건강보험은 선별 복지일까? 그렇지 않다. 보편적 복지는 다 똑같이 준다는 의미의 보편이 아니라, 일단 필요가 발생하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보편이다. 중요한 단어는 ‘필요’다.

‘필요 기반’은 보편적 복지의 핵심 원리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보편적 복지국가 운동의 또 다른 산파다. 그는 ‘필요 기반’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강남 아파트에 살 필요를 느꼈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충족해주지는 않는다. 복지국가에서 말하는 필요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사회경제적 권리, 그러니까 주거와 건강과 교육 등은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 보장받아야 한다는 의미의 필요다. 필요란 온전히 주관적인 감각이 아니고 어느 정도 객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이라 해서 고정불변은 아니다. 사회가 보장해야 할 필요가 어디까지인지는 역사적으로 구성된다.”

ⓒ연합뉴스2011년 8월21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며 무릎을 꿇고 있다.

급식 앞에선 모두의 필요가 같다

이런 의미다. 주거권이나 교육권 같은 사회경제적 권리는 흔히 ‘2세대 권리’라고 불린다. 사상의 자유, 재산권, 참정권 등 전통적인 ‘1세대 권리’와 대비해서 그렇게 부른다. 이런 권리는 역사적으로 서서히 발전해온 것이면서(‘2세대’), 강남 아파트가 필요하다는 개인의 주관과는 질적으로 다른 객관성이 있다. 즉, 어떤 서비스가 보편적으로 필요한지 사회가 합의할 수 있고, 사람마다 얼마나 더 있어야 필요가 충족될지 계산할 수도 있다. 보편적 복지란, 이 사회경제적 필요를 충족할 권리를 보편적으로 보장한다는 원리다.

급식은 교육이라는 2세대 권리의 일부다. 학생이라면 ‘이건희 손자’를 포함해 누구나 학교에서 밥을 먹을 필요가 발생한다. 병의 종류에 따라 치료비가 크게 달라지는 건강보험과 달리, 밥은 차등을 둘 이유가 사실상 없다. 그래서 급식은 다 똑같이 줬다. 보편적 복지가 다 똑같이 주는 원리여서가 아니라, 급식이라는 문제에선 모든 이의 필요가 사실상 같았기 때문이다. ‘다 똑같이’는 보편적 복지의 속성이 아니라 급식의 속성이다. 그런데 이것이 보편적 복지 그 자체의 원리라는 오해를 불렀다. 이상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선별이냐 보편이냐가 아니다. 보편적 복지는 선별과 차등 지급을 다 포괄하는 원리다. 핵심은 필요에 맞추어 주는 것이다. 동일한 필요가 발생하는 일은 무차별로 주고, 필요가 달라지면 차등해서 준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의 원리는 획일이 아니라 형평이다. 같은 사람은 같게, 다른 사람은 다르게. 그 결과로 모두의 필요가 보편적으로 충족되는 것이다.”

이 렌즈로 재난지원금 논란을 들여다보자. 보편적 복지는 모든 국민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라고 요구할까? 답은 재난 국면에서 지원을 받을 ‘필요’가 어떤 형태로 발생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재부는 영업제한 정책으로 직접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 맞춤 지원을 가장 선호한다. 기재부와 각을 세워온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투트랙 접근법이다. 자영업자의 영업손실은 제대로 보상하면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이 지사의 페이스북에는 “코로나19로 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국민 모두가 피해를 입고 고통받고 있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필요’가 전 국민에게 발생했다는 얘기다.

이 주장은 현실의 격차를 얼버무린다. 심리적 불안감이나 사회적 관계 위축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사실상 소득 감소를 겪지 않았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의 수혜도 이 고소득 그룹에서 주로 가져갔다. 반면 자영업자는 정부의 영업제한 정책으로 직접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둘 사이에 한 층이 더 있다.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들은 정부 정책으로 직접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소득감소와 일자리 상실을 집중적으로 경험했다. 이 세 층이 경험한 재난의 성격은 꽤 달라서, 같은 ‘필요’가 발생했다고 한데 묶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재난지원금의 성격도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삼자택일이다. 첫째, 직접 피해자인 자영업자 지원금이 가장 대상이 좁다. 중앙정부의 2차·3차 재난지원금이 이 성격이다. 둘째, 모두에게 차별 없이 지원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가장 대상이 넓다. 1차 재난지원금이 이 모델이었다. 지금은 주로 이 둘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세 번째 모델도 있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소득이 후퇴하고 일자리가 흔들린 불안정 노동자를 포괄하지만 ‘괜찮은 일자리’ 노동자는 배제하는 재난지원금이다. 불안정 노동자를 직접 잡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소득 하위 그룹에 지급하면 대략 유사한 효과가 난다. 1차 재난지원금 논의 당시 청와대와 기재부가 선호했던 소득 하위 50% 지급이 이 모델이지만 이때는 전 국민 지급으로 결론이 났다. 지방정부에서는 서울시가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재난생활비를 지급한 적이 있다. 세 번째 모델이 실제로 가동된 사례다.

ⓒ연합뉴스2020년 7월2일 총리공관에서 목요대화가 열렸다.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 두 번째), 이재명 경기도지사(맨 오른쪽), 김경수 경남도지사(맨 왼쪽) 등이 참석했다.

이렇게 보면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의 논쟁 구도도 달리 읽어야 한다. 당시에는 소득 하위 50%에 선별 지급하자는 기재부와, 보편 지급하자는 민주당·경기도·경남도의 논쟁처럼 보였다. 특히 정권 실세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보편 지급으로 기운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당시 경남의 주장은 보편 지급이 아니라, ‘보편 지급 선별 회수’였다. 경기도의 접근법과 비슷해 보이지만 꽤 다르다.

경남이 가장 심각하게 봤던 문제는 기재부식 선별 지급이 당시 정부 역량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실시간 소득 집계가 없었기 때문에 코로나19 피해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소득 하위 50%를 정확히 추려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즉, 재난으로 실제로 발생한 ‘필요’에 정부가 접근할 역량이 없었다. 재난 피해가 급박하여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무차별로 지급하되 추후 연말정산을 통해 소득세로 환수하자는 접근법이었다. 이러면 고소득자일수록 많이 토해내므로 결국 저소득자만 선별 지원한 효과가 난다. 이것은 세 번째 모델인 ‘저소득층 선별 지급’과 경로만 다를 뿐 취지가 같다. 실제로 관철된 것은 경남식 선별 회수 단계가 빠진, 경기도식 무차별 지급 모델이었다.

보편적 복지 이론가들도 세 번째 모델의 손을 들어준다. 재난 피해를 지원받을 ‘필요’는 자영업자와 하위 소득계층을 포괄하지만, 소득 감소를 겪지 않은 고소득층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다. 즉, 보편복지론이 중시하는 ‘필요’는 코로나19 재난의 속성상 저소득층에 집중해 발생한다. 세 번째 모델은 행정적으로는 선별 지급이지만 철학적으로는 보편 복지다. 이상이 교수는 “이건희 손자에게 공짜 급식을 주는 게 보편 복지이지만, 재난지원금은 안 주는 게 보편 복지다”라고 말했다. 오건호 공동위원장은 정부 역량 문제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사람에게 두텁게 지원이 가는 게 보편 복지 원리에 맞다. 소득 감소를 측정하여 지원 대상을 선정할 정부 역량이 지금은 있을까? 자신 없으면 차라리 똑같이 나눠주고 연말정산 때 고율로 환수하는 게 낫다.”

ⓒAP Photo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개념을 통해 미국의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사상적 토대를 만들었다.

필요를 알아채고 충족할 국가의 역량

이렇게 해서 보편이냐 선별이냐라는 익숙한 질문으로 출발한 논의가 뜻밖의 낯선 주제에 도착했다. 보편적 복지의 관점으로 보면 진짜 문제는 ‘필요’다. 따라서 ‘필요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부터 재난지원금 논쟁에서 경남도의 정책 노선을 다듬어왔다. 그는 정부가 소득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시스템이 없다는 게 이 모든 논란의 진짜 뿌리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 소득 파악을 국세청으로 일원화해서 복지정책의 바탕 자료로 삼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후 정부에서 추진되지 못했다. 이걸 지금 국가가 해야 한다. 평소에 하면 ‘세금 더 걷어가려고 그러나’라는 의심이 나오지만, 지금은 재난기에 지원을 하려면 소득 파악이 중요하다는 걸 시민들이 느끼고 있다.”

이것은 재난을 계기로 국가에 대한 중대한 인식 전환을 만들어내자는 주장이다. 고전적으로 국가의 역량이란 ‘세금을 뜯어가는 역량’이었다. 거의 전근대적인 약탈국가의 역량이다. 이런 역량은 부족할수록 좋다. 그래야 시민이 국가의 간섭과 압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런 권리,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고전적인 ‘1세대 권리’다. 국가 역량을 제약해야 권리가 지켜진다. 현대 복지국가로 오면 이 관념이 뒤집힌다. ‘2세대 권리’인 주거권·건강권·교육권 등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충족시켜줘야 작동하는 권리다. 현대 복지국가의 역량이란 ‘필요를 알아채고 충족시켜줄 역량’이다. 2세대 권리는 이런 국가 역량이 높아야 지켜진다.  

선진 복지국가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을 20세기에 이뤄냈다. 고전적인 1세대 권리의 천국으로 여겨지는 미국조차 그랬다. 미국에서는 ‘뉴딜’을 기치로 민주당 장기 집권 시대를 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 전환을 이끌었다. 1941년, ‘네 가지 자유’라는 유명한 연설에서 루스벨트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개념을 제시한다.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최소한의 생활 보장은 자유의 전제조건이다. 자유의 개념을 사회경제적 권리로 확장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접근법은 미국의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사상적 토대로 작동했다.

코로나19 재난기는, 현대국가가 이런 극적인 인식 전환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서도 드러냈다. 이제 국가 역량이 높아야 시민이 국가를 이용할 역량도 높아진다. 국가 역량이 낮을수록 부자가 이득을 보고 가난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 국가 역량이 충분히 높지 않으면 재난지원금은 소득 불문 무차별 지급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게 1차 재난지원금 논쟁의 귀결이었다. 국가 역량이 높아서 같은 규모의 재정을 소득 하위 절반에게 몰아줄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의 이득은 더 커지고, 가난한 사람은 지원금을 소비할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재정 투입의 경제효과도 더 커진다(정부가 준 재난지원금, 국민들은 얼마나 썼을까? 기사 참조).

선별이냐 보편이냐는 납작한 양자택일을 뛰어넘고 나면,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국가가 권리로 보장해야 할 필요란 무엇인가. 이것은 현대 복지국가의 사회서비스를 어디까지 확장할지의 문제다. 나아가, 21세기에는 노동과 무관하게 존재 그 자체로 필요가 발생한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기본소득론으로 가는 경로다. 보편적 복지국가 진영과 기본소득 진영은 바로 이 ‘필요의 범위’를 달리 보기 때문에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둘러싼 논쟁도 그 전초전이다.

둘째, 필요를 어떻게 측정하고 대응할 것인가. 특히 재난기의 국가는 필요 측정의 정확도와 속도를 매우 높은 정도로 급박히 요구받았다. 이것은 2세대 권리에 대응할 국가 역량의 문제다. 나아가 국가의 역량을 제약하는 게 시민에게 유리한가 증진하는 게 유리한가라는, 근본적인 정치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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