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판단을 누가 할 것인가

김영화 기자 2021. 1. 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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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떠나간 자리마다 법과 제도가 생겼지만 사건은 되풀이된다. 현장에서 필요한 건, 불확실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부모를 설득해내고 아이를 안전하게 분리시킬 수 있는 전문 인력과 권한이다.
ⓒ연합뉴스1월12일 경기도 양평군의 한 공원묘원에서 시민들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 양을 추모하고 있다.

2014년 1월 제정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처벌법)은 원래 ‘서현이법’으로 불렸다. 2013년 10월24일 울산시 울주군에서 여덟 살 이서현 양이 새엄마 박 아무개씨(40)에게 장기간 학대를 받다 사망에 이른 사건이 계기였다. 이 법으로 아동학대 사건에 경찰과 검찰, 법원이 개입해 가해자를 처벌(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아동학대 지원 현장에서는 이 법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동학대 사건은 아동복지법을 통해 예방 및 사후관리 중심으로 다뤄졌다.

아이가 떠나간 자리마다 법과 제도가 생겼다. 원영이(2016), 은비(2016), 준희(2017) 등 아동학대 관련 법에 붙은 이름도 거의 해마다 바뀌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은 극히 일부다.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매년 증가해 2018년 3만3532건으로 집계된다. 이 중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2018년에만 28명이다.

지난해 10월13일 양부모의 지속적 학대와 방임 속에서 16개월 여자아이 정인이가 숨졌다. 부검 결과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이미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5·6·9월에 세 차례 있었다. 멍이 자주 들었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실이 입수한 아동권리보장원 기록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부모와 20여 차례 면담했다. 경찰 수사도 두 차례 이루어졌다. 부모는 그때마다 “아동의 오다리를 교정해주기 위해 다리 마사지를 해줬다(5월25일)” “아이 입에 염증이 있어 잘 먹지 못했다(9월23일)”라며 학대를 부인했다. 수사는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마지막 신고일로부터 20일째에 아이는 숨을 거두었다. 입양된 지 9개월 만이었다.

법이 강화되고 매뉴얼은 촘촘해지는데 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는가. 현장에서는 “법과 제도가 없어서 정인이를 못 구한 게 아니라 있는 법도 작동이 안 되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현행법에도 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아이를 격리하는 ‘응급조치’ 조항이 있고, 2014년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에는 ‘3회 신고 시 경찰이 구속수사를 한다’는 지침도 있다. 9개월간 정인이 가정에 개입한 기관은 총 다섯 군데. 입양기관과 어린이집,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병원이다. 9월23일 소아과 의사가 마지막 3차 신고를 할 땐 “아동학대로 몇 번 신고가 들어가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에서 출동을 했던 아이”라고 전했는데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를 분리하지 못했다.

소극적인 대처와 부실 대응은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 대부분 발견되는 문제다. 서현이, 원영이, 은비, 준희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고가 있었고, 부모와 아이를 직접 만났다. 그러나 부모의 체벌을 훈육으로 넘기거나 부모의 주장에만 치중한 결과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지 못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권태훈 팀장은 “아동학대 관련 법과 매뉴얼들이 사실 손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짜여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을 다루는 게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서다. 아동과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현장은 계속 헛돌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정인이 사건 이후에 내놓은 대책은 ‘2회 신고 시 즉시 분리’하는 조치였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양천구는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두 번 이상 들어온 아동의 몸에서 상처가 발견되면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출동해 72시간 동안 응급 분리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동학대 사건을 지원하는 현장에선 아동학대를 몰이해한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을 지원해온 김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학대가 계속됐다면 처음 신고되어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매번 아동보호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자고 말하면서 현장 재량을 줄이고 실무자들을 횟수 세는 ‘전문 배달부’로 전락시켰다”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2016년 3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아동학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어린이집 교사 등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들은 아동학대 판단을 ‘무 자르듯’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화장실 수전에 부딪혔다며 머리가 찢어진 채 실려온 아이, 레고 블록을 삼켜서 온 아이에 대해 학대를 의심할 수 있을까. 중학생 아들을 제지하다 효자손으로 멍이 들게 한 경우는 어떨까. 100일 된 아기를 멍들게 한 엄마를 즉시 분리해야 하는데 아기가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면 분리하는 게 맞을까. 15개월 아이에게 사흘째 분유만 먹여 설사와 탈수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학대일까…. 10년 차 소아과 전문의인 김수현씨(가명)가 현장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일들이다. 그는 “정인이 사건은 극단적인 상황이었지만 사실 9할은 학대가 명백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연령에 따라, 신체적 혹은 정신적 학대냐에 따라, 아동인권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전문성이 필요한 이유다.

‘학대가 발생하면 반드시 신고하고 엄벌에 처하라’는 매뉴얼은 현장에서 쉽게 작동하기 어렵다. 아이 손에 난 상처를 보고 상의를 벗기자 양육자들이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놓쳤다가 큰일 날 것 같은’ 사건들이 한 달에 한 건 정도씩 발생한다. 그럴 때는 경찰에 신고한다. “신변에 대한 부담은 차치하고라도 내 신고 한번으로 아이가 엄마 아빠를 못 보게 될 수도 있고, 학대 부모라는 오명을 씌울 수도 있는데 그걸 다 감수하고 개입해야 할 수준의 외상인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적극 개입이 어려운 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된 이후 조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대 행위자 대부분이 비협조적이다. 임기영씨(가명)는 경기도에서 일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6년 차 상담원이다. 그는 매번 “욕먹을 각오”로 일을 한다. “문을 안 열어주는 건 다반사다. 우리가 가정을 파탄 내러 오는 거라며 거부한다.” 실제로 신고를 받고 아동을 분리한 경찰이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1월3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자신을 현직 경찰이라고 밝힌 이가 학대 아동을 부모와 분리시켰다가 갖은 소송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몸에 남은 멍, 6차례 면담을 토대로 아이가 학대당했다고 판단해 부모와 분리했다. 나를 감싸주는 윗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얼마 안 있다 직위 해제를 당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예방 관련 교육 및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아동 분리한다 해도 시설과 인력 부족

위기 아동을 즉시 분리한다 해도 그 이후가 또 문제다. 전국 76개 학대 피해아동 쉼터에 수용 가능한 인원은 600여 명에 불과하다. 임씨는 학대받는 아동을 발견해도 쉼터를 찾지 못해 분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럴 때는 전국 쉼터에 남는 자리를 찾을 때까지 전화를 돌린다. 충청도와 강원도에 보낸 적도 있는데 그것도 운이 좋은 경우다.” 3월부터 시행되는 ‘즉시 분리 제도’를 앞두고 아이를 보낼 시설도, 돌볼 인력도 부족하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없어 아이를 분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누구의 책임일지 우려한다.

학대라는 판단부터 위기 아동 분리 이후까지, 현장은 불확실성투성이다. 모든 걸음마다 판단이 잘못될 위험이 늘 따른다. 아동보호전문기관(사례 관리), 경찰(수사),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조사) 세 주체 사이에서 엇박자가 난다는 것은 이 위험부담이 현장에 내맡겨지고 있다는 증거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늘 책임 추궁과 경질, 비난, 처벌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점에 대해 “아보전(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의사의 판단을 종합적으로 듣고 결정했다”라고 말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처음 두 차례나 수사 의뢰를 했는데도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라며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 경찰서에 학대예방 경찰관을, 2020년에는 지자체별로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을 배치하면서 공적 개입을 강화했지만 순환보직인 탓에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선에서는 “고통스러운 사람만 한 명 더 늘었다”라는 자조가 나온다.

상담원 임씨는 한 달에 70~80가구를 담당한다. 고위험 가정은 매달 네 차례 가정방문을 하고 있다. “어느 집에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보려면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데 대다수 상담원들이 높은 업무강도와 심리적 소진을 견디지 못하고 2년도 안 돼 퇴사한다”라고 말한다. 담당하던 가정에서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 내가 찾아갔으면 달랐을까’ 자책감과 트라우마가 남는다. 사망사건이 터지면 비난과 질책이 쏟아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동이 사망할 때마다 방지 대책이 수없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인력 증원과 인프라 구축이 ‘단골 메뉴’처럼 나왔지만 임씨는 실제로 체감하는 변화가 없었다. 현장에서 필요한 건 정부 매뉴얼대로 수행할 인력보다는 불확실한 아동학대 사건에서 부모를 설득해내고 아이를 안전하게 분리시킬 수 있는 전문 인력과 권한이다. 임기영씨는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

2021년 1월8일에 ‘정인이법(아동학대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인 양의 얼굴이 공개된 지 엿새 만이었다.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김예원 변호사는 “국회는 그동안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여론 잠재우기식으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들은 이제 그만 나와야 한다. 잘 모르겠으면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봤으면 한다. 아이가 죽고 나서 매번 법과 제도를 고치다 보니 현장이 멈추는 상황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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