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트럼피즘의 치명적 유혹은 계속된다

기자 2021. 1. 26. 11: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트럼프에 현대판 기억말살刑

반면 포퓰리즘 기대는 더 강화

백인 하층 노동자 불만도 여전

트럼피즘 根源 없애는 일 중요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이 해법

경제 튼튼해야 민주주의 건강

고대 로마에는 기억말살형(damnatio memoriae)이라는 게 있었다. 모든 역사 기록, 동전, 그림 및 조각상에서 이름이나 모습을 지우고 그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금지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만드는 형벌이었다. 3명의 황제가 사후에 이 기억말살형에 처해졌다.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현대판 기억말살형에 직면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부터 계정을 삭제당했다.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을 부추겼다는 혐의로 퇴임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13일 하원에서 2019년에 이어 또 탄핵당했다. 퇴임 후 돌아간 플로리다에서는 여러 은행으로부터 거래 중지를 당하기도 했다. 다음 달 8일에는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시작된다.

첫 번째 탄핵에 비해, 탄핵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커졌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비해 혐의의 입증 가능성이 커진 데다 등을 돌린 의원도 늘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때는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하원의원이 1명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10명이 찬성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한때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였던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조차 트럼프와 거리를 두는 걸 보면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도 자신과 당의 미래를 계산한 이탈자가 분명히 늘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 상원의원 50명 가운데 17명까지나 탄핵에 찬성할 것 같지는 않다. 공화당이 큐어논(QAnon·극우 음모론 단체)의 연장이 될지 아니면 트럼프를 털고 새롭게 나아가야 할지 기로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탄핵이 반드시 공화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탄핵된 대통령의 정당으로 영원히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에게 투표한 7400만 명의 유권자 가운데 다수가 여전히 선거부정에 대한 트럼프의 주장을 믿고 있다. 탄핵은, 정부가 자신들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는 믿음만 강화시켜 트럼프의 거미집에서 떼어내야 할 사람들을 오히려 더 깊숙이 들어가게 하는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상원에서 탄핵되지 않더라도 개인 트럼프의 기억은 지워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트럼프가 지워져도 트럼피즘, 즉 트럼프식 포퓰리즘은 사라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트럼피즘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정치·경제적 변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외국의 노동자와 불법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국가의 부름에 응해 전쟁터로 나가 피 흘렸지만 돌아온 것은 가난과 절망뿐이었던 힐빌리들(백인 하층 노동자),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을 보면서 유색인들보다도 못한 처지에 떨어졌다고 생각하게 된 백인 노동자들이 기성 정치에 대해 느낀 강한 불만을 단순하고 강력한 정책 대안으로 대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동안 변화가 있었다면, 트럼프의 정책들이 일정한 성과를 내면서 트럼프식 포퓰리즘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커졌다는 점이다. 트럼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세력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더라면 수많은 기행(奇行)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도 트럼프가 승리했을 개연성이 짙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분열된 미국을 다시 통합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다. 하지만 통합은 ‘다양성’의 기치 아래 정부 요직에 소수자를 대거 기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오바마의 당선이 뒤처진 사람들을 절망케 한 것처럼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설이 나타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등장을 가져온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트럼피즘의 치명적인 유혹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시 경쟁력 회복, 일자리 늘리기, 격차 해소 등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트럼프 소동은 경제가 튼튼해야 민주주의도 건강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년 이상 된 미국의 민주주의가 경제가 병들자 트럼피즘의 위협에 노출됐다. 미국만이 아니다. 유럽의 민주주의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포퓰리스트 정당의 도전을 받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실업률이 1%포인트 오를 때마다 포퓰리스트 정당에 대한 지지가 2∼3%씩 증가하고 있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