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고 감독출신 올림픽 국가대표 레전드 감독들'[조영섭의 스포츠산책]

조영섭 기자 2021. 1. 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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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체고 주남수 교장과 체고 감독출신  올림픽 국가대표 레전드 감독들
조성동 대표팀 감독 올림픽 금메달  양학선 과 은메달 여홍철(우측)

[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지난 주말 25년 전 필자가 서울체고 복싱강사로 재직시절 함께 근무했던 종목별 레전드로 불리는 전설적인 감독들과 자리를 함께하며 옛 추억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훈훈한 대화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주인공은 99년 서울체고 입사 동기인 체조 감독 조성동, 레슬링 감독 유종현, 펜싱 감독 오경석이였다. 추억을 공유한 어제의 용사들이 전 서울체고 주남수 교장의 러브콜에 필자의 체육관에 속속 합류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뭉쳤다.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복싱 레전드 문성길 챔프와 그의 사업 파트너인 소병관 대표도 참석 자리를 빛내줬다. 문성길 은 89년 4월 27살의 필자가 당시 WBA 밴텀급 챔피언인 29살의 문성길의 트레이너를 담당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행선처럼 마주보며 32년 세월 고락을 함께한 소중한 인연의 복서다. 1983년 프로야구 해태에 재일동포 투수 주동식(48년생, 도에이 플라이어스)이 입단할 때 35살인 그를 전담 지도한 투수 코치 유남호(51년생. 연세대)가 32살 였던 것처럼 필자와 문성길 은 선수보다 코치가 나이가 어린 이색적인 콤비 였다.

문성길 챔프와 주남수 전 서울체고 교장(우측)

1997년 10월 전국체전이 끝나고 부터 서울체고에 강사로 근무한 필자는 그해 학생선수권 종합우승과 연맹 회장배 종합 준우승을 일궈낸 채승석, 김지훈 (한국체대), 유재민(대전대), 성국경, 정진우(서원대), 최인태, 권오근(용인대), 강대원(군산대) 등 졸업생 8명이 썰물처럼 모두 빠져 나간 후 팀을 맡았다. 어차피 인생이란 고통의 바다 태어났으면 좋던 싫던 건널 수밖에 없는 장애물이 도처에 펼쳐지는 삶의 여정 속에 프로구단 쌍방울과 태평양 팀을 맡아 혹독하게 선수들을 조련하던 김성근 감독처럼 매몰차게 학생들을 지도 1998년 학생 선수권대회에서 6체급을 결승에 올려 이옥성(경남체고)을 16-11 판정으로 잡고 코크급에서 국나남이 우승과 함께 최우수복서에 선정되며 종합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렇게 서막을 연후 국나남을 비롯해 신동천, 황이태, 서영민, 신상민, 김정섭, 서윤복 등 7명을 5년 동안 차례차례 한국체대에 입학 시킨 후  2001년 6월 서울체고 강사생활을 접고 문성길 챔프가 차려준 체육관을 함께 운영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소병관 대표, 유종현 감독, 주남수교장, 문성길 챔프, 조성동 감독 (우측)

뜻 깊게 어제의 전우들을 초빙해 이 자리 를 마련해 주신 분 은 체육교사의 꽃인 서울체고 교장을 역임한 주남수 선생이였다. 태권도 공인4단, 유도 공인 2단인 이분은 2008년부터 서울체고 교장을 수행하면서 겸손하고 온화한 인품으로 많은 교사들과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대표적인 교육자였다. 이분을 뵐 때 마다 마치 5공 정권 때 경제수석을 지낸 김재익 비서관이 생각 난다. 

아웅산 사건때 순직한 김재익은 청와대 근무시절 출근 할 때 청소부 아줌마들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를 했고 여성 경리들에게도 존칭을 썼던 청렴결백한 대표적인 공직자로 각인된 분인데 주교장이 그분과 비슷한 삶을 사신 분이란 생각이 든다. 1948년 전북 김제태생의 주교장 은 첫돌을 맞이 하기전 모친의 별세에 이어 서울 균명고에 입학한 1963년 교육자였던 부친 마져 삶을 등지면서 고아아닌 고아로 전락 결국 낙향, 김제 고등학교로 전학한 주남수는 조선시대 단종과 비슷한 굴곡진 삶의 풍파를 맞이한다. 결국 서울대학에 진학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교육계로 진출하려 했던 소년 주남수의 꿈은 유리창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면서 험난한 여정이 그를 기다린다.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2년제 전주교대를 거쳐 전주대학을 졸업 한후 고창 과 남원의 중학교 평교사로 근무하다 뜻하지 않은 돌발사고로 자동면직 된후 두차례 치러진 임용고사에 모두 합격 서울 성수중학에 입성 한후 이후 태릉고를 거쳐 장학사 시험에 합격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동안 서울시 교육청 체육과장과 서울체고 교장을 역임한 주남수 교장에 대해 서울대,  경희대 출신들이 주류를 이룬 견고한 벽을 지방대 출신의 헨디캡을 극복하고 입성한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유종현 감독은 일성했다. 

주교장은 필자와 대담에서 용산공고 근무시절 무보수로 너무나 긴 기간동안 애쓰셨다고 위로한 후 장학사로 있던 본인이 그 사실을 진즉에 알았으면  도와 줬을 것 이라고 말했다,  

런던 올림픽에 동반 출전한 유종현 레슬링감독과 조성동 체조 대표팀 감독(우측)

조성동, 유종현, 오경석 이 세분은 1998년 나란히 서울체고 체육교사로 입성. 담당종목에서 입지를 구축 한 자랑 스런 체육인이다. 우선 체조계의 히딩크 감독으로 불리는 살아있는 체조계의 전설 조성동(경희대) 감독은 성경구절에 나오는 구절처럼 한국 체조계 역사의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었던 불멸의 레전드 감독이다.

황무지였던 한국체조를 기름진 옥토밭으로 개간한 조성동 감독의 32년 외길인생을 펼쳐놓으면 화려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로 그는 맡은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체조계의 명장이다. 1947년 경기도 이천출신의 조성동(성남고-경희대)감독은 1979년 태릉 선수촌에 지도자로 입성했을 때 당시 한국체조는 그해 올림픽 선발전에서 최하위권 밑바닥에 쳐진 상태였다. 급기야 대한 체조협회에서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러시아의 유진 갈파린 코치를 초빙, 선수촌에서 대표 팀을 지도하자 조감독은 그의 기술을 전수 받기위해 친분을 쌓은 후 러시어로 된 체조서적을 복사, 글자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 한 후 이를 한국형 체질로 보완 개선한후 집대성 시킨다. 성공의 비결은 단하나 잘 할 수 있는 일에 광적으로 집중 하는 것 이라는 명언을 남긴 톰 모나건 의 어록처럼 그는 그렇게 한국체조를 선진국 반열에 진입시키기 위해 몰입에 몰입을 거듭했다.

이런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 유진 갈파진 은 계약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 앞으로 한국체조의 앞날은 조성동 두손 에 달려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한국 체조발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초석을 구축했다.

그는 마치 고려 말 최 무선이 화약을 만들기 위해 중국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무역항 벽란도에서 원나라 사람 이원과 친분을 쌓은 후 구국의 일념으로 염초제조법을 배운 후 이를 기반으로 1376년 화약개발에 성공 1380년 군산 앞바다에서 왜선 5백여 척 을 격파시키는 세계최초의 함포대전인 진포해전에서 큰 공 을 세웠듯이 조성동 감독도 러시아인 유진을 통해 습득한 각종 정보와 자료를 집중분석 이를 토대로 신기술을 개발 이를 후학들인 유옥렬, 이주형, 양학선에게 전수. 이들이 올림픽에서 천금 같은 금, 은, 동을 합작하며 국위선양할 때 선봉 역할을 하였다. 이에 대해 조감독은 필자에게 난 덕장도 용장도 맹장도 아닌 그저 좋은 선수 만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운장이라고 말하며 혹독한 훈련에 순응하며 따라준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조성동 사단의 선두주자는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남자 평행봉에서 9.900을 기록 세계선수권자인 중국의 리징 을 꺽고 감격적인 금메달을 획득한  당시 대구 대륜고 3학년 이주형 이었다.이후 이주형 은  2002년 시드니 올림픽 평행봉과 철봉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합작 체조한국의 서광을 비췄고 뒤를 이어 유옥렬(경희대) 이  1992년 제1회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체조사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금메달(뜀틀)을 획득한후 여세를 몰아 그해 바로 셀로나 올림픽에 출전 한국 체조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전열을 추스린 조성동 사단의 한국 체조 대표팀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게임 체조단체전 에서 숙적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준우승을 창출한 후  여 홍철(경희대)이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도마에서 은메달을 획득 한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최후의 히든카드인  양학선이 화룡정점(畵龍點睛)에 마침표를 찍고 도마 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33년 지도자 생활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런던 올림픽 레슬링 대표팀 유종현 감독과 금메달 김현우(우측)

79년부터 대표팀 맡아 33년간 선수들을 지도한 조성동은 경희대시절 자신이 이루지 못한 메달의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일궈내려는 원대한 꿈과 목표를 실현 시키기 위해 매일 밤 외국 서적을 읽으며 부단한 형설지공의 사투 끝에 신기술 개발에 나서 여홍철 에겐 여1, 여2 신기술을 양학선에겐 양1 이란 신기술을 공유  한국 체조를 반석위에 세운 후 박수를 받으며 떠난다.

조성동 체조대표팀 감독과 유종현 레슬링 감독은 런던 올림픽에 대표팀 감독으로 출전했고 KBS 펜싱 해설자로 변신한 오경석 감독은 방송위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질긴 인연으로 연결된 친숙한 3인방이다. 한국체대 출신으로 첫 교장선생으로 재직하다 작년에 퇴임한 이학박사 유종현 감독은 필자가 서울체고 복싱강사로 재직시절 틈틈이 격려금을 손에 쥐어주며 성원을 보내준 종목을 초월해 고마운 체육계 선배다. 그 인연으로 서울체고를 떠난지 20년 세월이 훌쩍 지냈어도 필자는 각골난망하며  교류하면서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조성동 감독 오경석 선생 문성길 챔프 (우측)

조성동 체조감독과 며칠전 필자는 오찬을 하면서 말했다. 유종현 감독 그분은 당시 나에게 준 격려금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자에 받을 수(受)에다 마음 심(心)이 합해지면 사랑(愛)이 된다고 메모지에 써 보여 드리면서 그 격려금은 나에게 마음을 전달한 것이라 말하자 조성동 감독은 유종현 감독이 양학선이 정부수립 후 최초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때 그가 광주체고 후배이기도한 양학선에게 산삼을 구해다가 전달해 주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공헌을 한 체육인이 바로 유종현 감독이라고 말하며 화답한다. 

한국체대 출신으로 최초로 교장을 역임하고 작년에 퇴임한 유종현 감독은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레슬링 66kg급 결승전에서 헝가리의 타마스 로린츠를  물리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정지현의 금메달 이후 8년만에 금메달을 쟁취한 김현우(삼성생명)를 탄생시키며 주목을 받은 지도자인데 두사람 모두 런던 올림픽에 동반 출격 동반 금메달을 획득한 후 동반 은퇴를 했다.

오경석 서울체고 펜싱감독은 99년 서울체고 펜싱부를 창단 서울체고를 정상에 올려놓은 후 교장으로 퇴임한 체육인이다. 그는 8년동안 서울체고에 근무하면서 체계적인 지도방식으로 선수들을 조련, 볼모지 서울체고 펜싱을 전국 정상권에 올려놓은 지도자로 플뢰레 펜싱에서 아시아선수권 개인전에서 단체전에서 무려 6차례 우승과 함께 2018년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획득에 이어 그해 세계선수권 동메달을 획득한 펜싱의 간판 허준, 이전엔 2010년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에페 단체전 금메달 김원진(한국체대), 2006년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에페 단체전 금메달 박상선, 2015년 제 28회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펜싱 샤브르 단체전 금메달 김선희 등 한국 펜싱의 간판선수들을 쉼없이 베출한 지도력이 검증된 체육인이다. 현재는 대한 펜싱협회 부회장을 거쳐 KBS 헨드볼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당대 최고의 이론가로 정평이 난 펜싱인이다. 

끝으로 주남수 교장을 비롯한 서울체고 레전드 감독 트로이카의 건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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