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횡단보도서 사고 낸 경찰..'민식이법' 적용 안받는 이유는

정다움 기자 2021. 1. 2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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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13년째 노면 표기 실수..관리카드에 없어"
경찰 혐의 적용 변경해 사건 덮으려는 의혹 제기도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신가동 선창초등학교 인근 교차로 노면에 어린이보호구역이 표시돼 있다. 지난 5일 해당 교차로에서 이륜차를 추격하던 광주 광산경찰서 소속 A경위가 순찰차를 몰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초등학교 5학년생을 들이받았다.2021.1.11/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광주=뉴스1) 정다움 기자 = 노면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 표시된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을 순찰차로 친 경찰관에게 '민식이법'이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13년간 어린이보호구역을 알리는 노면표시에도 불구하고 광주시가 해당 구간은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라고 최종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혐의 적용을 변경하기 위해 '노면 표기 실수'라고 판단했다는 의혹 제기와 함께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행태라는 비판이 동시에 일고 있다.

26일 광주 광산경찰서와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광산구 신가동 선창초등학교 인근 교차로에서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을 받은 광산서 교통안전계 소속 경찰관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광주경찰청은 수사의 공정성을 위해 관할서인 광산경찰서가 아니라 서부경찰서로 사고 수사를 이첩했다.

경찰은 사고 발생 구간이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라는 광주시의 판단을 토대로 해당 경찰관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라는 광주시의 공문 내용을 전달받아 민식이법을 적용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과속 여부나 추가 적용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 중인 사건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최초 어린이보호구역 여부에 대한 논란은 공무 중인 경찰관이 신호를 위반, 교통사고를 내면서 불거졌다.

경찰은 사고 조사에 앞서 광주시와 광산구에 해당 교차로에 대한 어린이보호구역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어린이보호구역의 제한속도는 통상 30㎞지만, 해당 도로는 노면 표기상 50㎞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보호구역을 최초 지정·해제하는 광주시와 이를 유지·보수하는 광산구, 광주경찰청의 관리부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는 광산구 신가동 선창초등학교에서 170m가량 떨어진 횡단보도로, 횡단보도에 진입하기 30m 전 제한속도 50㎞와 '어린이보호구역'을 알리는 글씨가 노면에 표시돼 있다.

그러나 노면 표기와는 다르게 광주시와 광산구, 광주경찰청에서 관리하는 관할 내 어린이보호구역 리스트인 관리카드에는 해당 교차로가 어린이보호구역으로 등재돼 있지 않다.

더욱이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해제된 것인지, 지정은 됐지만 관리카드에서 누락된 것인지, 애초에 지정되지 않은 곳에 노면 표기를 잘못한 것인지 파악할 수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무책임한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지난해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암동 스쿨존 교통사고 현장에서 승용차가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가고 있다.2020.12.15/뉴스1 © News1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나서야 광주시가 단순 노면 표기상의 실수라고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최장 13년간 방치된 해당 도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광주시가 관할 지자체인 광산구에 '어린이보호구역을 재정비하라. 노면 표시를 철거하라'는 공문을 전달하면서 논란이 재차 일었다.

구는 광주시의 공문을 토대로 노면 표기를 비롯한 부속 시설물을 철거할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은 의견 수렴 과정없이 노면 표기를 철거하는 것은 '일방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광주시는 뒤늦게 시민공청회를 열고, 해당 구간에 대한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여부를 논의했다.

그 결과 학교 측과 학부모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해당 구간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확대 지정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전만중 선창초등학교 교장은 공청회 자리에서 "저를 비롯한 교직원들 모두 노면표시가 있기에 당연히 그곳이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인지를 하고 있었다"며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닌 줄 알았다면 진작에 지정해 달라고 시에 요청했을 것"이라고 13년간 방치됐던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해 황당해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사고를 덮어주기 위해 노면 표기 실수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사고가 난 도로의 어린이보호구역 여부에 따라 경찰관에게 적용되는 혐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찰은 어린이보호구역일 경우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아동 교통사고가 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민식이법'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단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혐의로 입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닌 곳이 13년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알려지면서 그간 발생했던 시민들의 피해보상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과거 해당 구간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민식이법이 적용돼 가중처벌을 받은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당 구역에서는 보행자 사고가 7건 발생했다. 이중 3건은 어린이보행자 관련 사고였다.

25일 오전 광주 광산구 선창초등학교 교장실에서 열린 '경찰 순찰차에 초등학생이 치인 사고 발생 구간에 대한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공청회에서 학부모와 광주시, 광산구, 광산경찰서 관계자들이 논의를 하고 있다.2021.1.25/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주민들은 광주시의 오락가락한 행정처리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6살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이모씨(40·여)도 "주민들은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리스트에 없어서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라는 게 황당하기만 하다"며 "이는 13년 동안 시가 시민들을 속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 북구 두암동에서 3살 여자애가 숨지면서 어린이들이 안전한 도시 만들겠다고 하던데,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설 보강을 하겠다는 거냐"며 "말뿐인 정책 말고 이번에는 행동으로 옮기는 정책을 보여달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광주시는 관할 내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한 관리부실에 공감하며 조속한 시설 정비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박갑수 광주시 교통정책과장은 "어린이보호구역 지정은 광주시가, 관리하고 정비하는 것은 자치구, 관계되는 경찰청이 담당하게 된다"며 "여러 기관이 참여하고, 기관별 이견이 있다 보니 시설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 표시된 노면과 관리카드가 다른 부분이 있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보호구역의 취지인 어린이 안전 보호를 위해 광산구, 광산경찰서와 논의를 마쳐 빠른 시일 내에 해당 구간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확대 지정하겠다"고 덧붙였다.

ddaumi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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