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돌아온 순정만화

곽아람 기자 2021. 1. 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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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1981년 집계 이래 처음으로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주식 책이 올랐습니다. 투자 전문가이자 유튜버 염승환씨가 쓴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77’(메이트북스)입니다. ‘주린이’가 뭐냐고요? ‘주식+어린이’의 준말, 즉 ‘주식 초보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부동산 초보자는 ‘부린이’, 주식 초보자는 ‘주린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주가가 상승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단어입니다. 쏟아지는 주식투자서를 보면서 주린이들이 ‘교과서’로 삼는 책은 무엇인지, 믿을만한 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며, 가려들어야 할 조언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주식 투자서계에도 심지어 16년간 100만부 팔린 ‘바이블’이 있더군요. 양지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주식 투자서, 교보 베스트셀러 사상 첫 종합 1위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 설치된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을유문화사

대학 때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선생님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은 것이 ‘실견(實見)’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작품을 반드시 직접 봐야한다는 것. 답사를 꼭 가야한다는 것. 돌아다니는 것 질색하는 ‘집순이’인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사진으로도 충분한데 꼭 실물을 봐야 하는 걸까? 디지털 기술이 극도로 발달해 ‘구글 아트&컬처’같은 스마트폰 앱으로 전세계 미술관 명화를 볼 수 있는 요즘은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림 한 점 보러 돈 들이고 시간 들여 멀리 떠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요.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담집 ‘다시, 그림이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예술과 풍경’에서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발품 판 만큼’ 보인다고 말합니다. “예술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려면 거의 항상 돌아다녀야 한다. 단순히 집에 앉아서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에 담긴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끝없는 기둥’ 보러 산길 5시간… “예술은 발품 판 만큼 보여”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완전판./세미콜론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완전판.

신간 더미에서 열 권짜리 만화책을 발견하고는 의아했습니다. 권당 1만6500원. 한 질에 17만원 가량 하는 비싼 책을 대체 누가 사볼까, 싶었죠. 게다가 자리도 많이 차지하잖아요. ‘세일러 문’은 일본 만화가 다케우치 나오코(54)가 1991년 처음 잡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선1997~1998년 TV 만화영화로 방영됐습니다. 평범한 10대 소녀가 마법 고양이의 도움으로 달의 정기를 받은 전사로 변신,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대사가 아직도 회자되지요.

판매 걱정을 하다가 출판사에 연락을 해 책 좀 팔렸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런, 기우였네요. 출간 1주일만에 초판 3000질, 즉 3만부가 매진되었다는군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구매자 중 어릴 때 애니메이션을 애청했던 30대 여성 비율이 63.3%로 가장 높습니다. 한 때는 이런 유행에 제법 빠르다고 자부했는데 이제 출판계 주소비층과 ‘세대 차이’가 나는 거구나, 생각이 들며 약간 씁쓸해졌습니다. ‘세일러 문’이 방영되던 시기 저는 재수생이라 그 만화를 볼 나이대를 훌쩍 넘었었거든요.

/알라딘 신일숙의 장편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그렇지만 40대 ‘언니들’도 아직 살아있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삶은 그 의미를 갖는다”라는 비장한 대사가 유명한 신일숙(60) 장편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복간본도 이달 초 나오자마자 스무 권짜리 1000질 초판이 몽땅 팔리고 현재 3쇄를 찍고 있답니다. 1986년 첫 권이 나와 1996년 완간되었죠. 가상 왕국 아르미안을 배경으로 네 왕녀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이 대서사시의 주 구매자는 어릴 적 만화방서 열광했던 40대 여성(51.7%)입니다.

‘순정만화의 귀환’인가요? 아니면 단순히 ‘추억팔이’ 마케팅의 성공일까요? 추억은 힘이 세다지만 ‘지갑을 열만한 추억’엔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만화광 40대 여성이 1980~1990년대 순정만화를 다시 읽는 책 ‘안녕, 나의 순정’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순정만화 속에서 여자들은 자유로웠다. 원하는 남자를 열망하고, 목숨 걸고 사랑하고, 우주로 떠나고, 혁명을 주도하고, 왕이 되었다. 다시 읽어보면 거슬리는 구시대 정서의 표현도 물론 있지만, 만화 밖 세상의 부조리함과 비교하면 사소한 수준이었다. ‘여자니까 하지 말라’는 말을 집에서 학교에서 지겹도록 들은 우리에게 순정만화는 ‘여자니까 해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곽아람 Books 팀장

거북이북스 신일숙 장편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알라딘 신일숙의 장편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알라딘 신일숙의 장편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알라딘 신일숙의 장편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알라딘 신일숙의 장편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알라딘 신일숙의 장편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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