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가 계약갱신" 강조해도..득보다 실 많았다

김나리 2021. 1. 2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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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 간 세입자 상당수 '계약갱신' 수혜
반면 전셋값 폭등에 임대차 갈등 등 부작용도 속출
올해 6월 '전월세신고제'로 시장 혼선 우려 더 커져
전문가들 "민간 위주 공급 늘려야..법 개선도 필요"

[이데일리 김나리 기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 시행 6개월 동안 세입자 상당수가 ‘계약 갱신’의 수혜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전셋값 폭등은 물론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혼선이 가중되고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이 늘어나는 등 각종 부작용도 속출했다. 게다가 올해 6월부터는 ‘전월세 신고제’까지 시행을 앞두고 있어 임대차 시장 혼란이 더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임대차 분쟁 155건…3배 증가

25일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주차 전·월세 통합 갱신률은 73.3%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 전셋값 2억~10억원 사이의 중저가 단지 100곳을 분석한 결과로, 새 임대차법 적용 전인 2019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1년간의 평균 통합 갱신율 57.2%와 비교했을 때 16.1%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에 대해 허 의원은 “신규 임대차법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새 임대차법의 부작용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새 임대차법으로 기존 계약이 갱신된 만큼 신규 매물 공급이 줄어든 데다 어렵게 전셋집을 찾아도 집주인이 5% 상한을 이유로 4년치 인상분을 미리 반영한 탓에 전셋값이 크게 뛰었다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이 법이 본격 시행된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0.69%, 0.81%, 0.71%, 1.02%로 점점 가팔라졌다. 올해 1∼3주 누적 상승률도 이미 0.75%까지 올랐다.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각종 혼선과 분쟁도 계속되고 있다.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히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는데, 실거주하겠다던 집주인이 막상 세입자가 다른 집을 계약하면 몰래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보는 등의 사례가 나오고 있어서다. 전세 낀 집 매수자가 기존 세입자 퇴거 문제 때문에 입주를 하지 못한다거나 세입자가 퇴거를 이유로 집주인에게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내달 13일부터 주택 매매 거래 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서류를 통해 확인토록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지만, 현재까지는 온라인 부동산 관련 카페에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갖가지 ‘꼼수’를 쓴다는 제보성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임대차 계약 관련 분쟁과 상담은 실제로 크게 늘어난 상태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임대료 증액 및 계약갱신 관련 조정은 총 155건으로, 전년(48건)과 비교해 3배 넘게 증가했다. 임대차법 관련 상담은 1만1589건으로 전년(4696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나아가 올해 6월 1일부터 도입하는 ‘전월세신고제’는 시장의 혼란을 더 키울 것으로 우려된다. 전월세신고제를 도입하면 전월세 계약 내용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되고, 각 지역별 전월세 가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이로 인해 거래 내역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세 부담이 늘어난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더 높이거나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세를 준 주택 관리를 부실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팀장은 “임대인의 투명한 소득 공개로 공정한 과세를 할수 있게 되는 등 제도 자체에는 타당성이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재산세, 보유세 부담이 이미 큰 데다 전월세상한제까지 있어 임대인들이 향후 늘어난 세금을 임차인에게 전가하거나 집 수리를 기피해 전세난이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임대차법 보완대책 내놔야”

정부도 이를 의식해 설 이전 내놓은 공급대책에 전세대책도 함께 담을 예정이다. 다만 이자 비용 지원 등 대책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전세난을 끄긴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출 규모 확대를 통한 전세보증금 현실화 인상, 대출 이자 감면, 현행 주거 바우처 제도를 통한 월세 대납 등의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이나 이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거주의무 완화 등 전세매물이 나오게 하는 게 시급하다”면서도 “하지만 정부는 기존 8% 수준인 공공임대주택 보급률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정도의 대책만 내놓을 것 같다”고 봤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지난해 11월 전세대책 발표 때 나온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임대차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진형 교수는 “임대 물량의 92%는 민간주택인 만큼 다주택자와 민간임대주택 사업자들이 보유한 주택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당장 입주 가능한 물량부터 늘릴 수 있도록 다주택자와 임대주택사업자들에게 적용하는 규제를 한시적으로나마 풀어 시장에 매물이 나올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새 임대차법이 계약의 자유와 재산권,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를 담고 있는 만큼 법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과도하게 집주인의 사용권을 제한하는 규제”라며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을 매수하면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 청구를 해도 거절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나리 (lor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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