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천 번쯤 포기하는 건 문제도 아냐"

허연 2021. 1.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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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가르델의 탱고 음악 `포르 우나 카베자 Por una cabeza`가 흘러나오던 영화 `트루 라이즈`
[허연의 아포리즘-87] #202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민낯의 파리'다. 20세기 초 '남미의 파리'라 불릴 만큼 전성기를 누렸고, 그 호시절이 남긴 매력적인 흔적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유럽의 파리가 짙은 화장을 한 얼굴이라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있는 그대로의 민낯이다.

칠이 벗겨진 건물들과 부끄럼 없이 내걸려 있는 빨래들…. 골목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과 몇 푼의 돈을 받고 거리에서 자결하듯 탱고를 보여주는 사람들. 옛 영광을 보여주듯 늘어선 대저택들과 멋진 공원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라는 레콜레타가 있는 곳.

편도 38차선 대로와 미로처럼 얽힌 사람 냄새 나는 골목이 함께 있는 곳. 그곳이 부에노스아이레스다.

그곳을 걸으면 누가 감히 남아메리카를 '서구의 사생아'라고 했는지. 그 말이 왜 틀린 말인지를 알 수 있다. 남아메리카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들만의 상처와 기쁨으로 넘실대는 개성과 열정의 땅이었다.

거리 어디를 가든 들려오는 그 반도네온 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과거의 영광은 잊혔을지 몰라도 그들은 이민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정열적으로 하루를 살고, 매 순간 그윽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라플라타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낙천과 솔직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는 감미로운 탱고 선율이 흘러나온다. 카를로스 가르델이 만든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라는 아주 유명한 곡이다. 우리말로 하면 '머리 하나 차이로'라는 뜻이다.

이 노래의 가사가 재밌다. 한 남자가 경마장에서 돈을 몽땅 날린다. 자신이 돈을 건 말이 '머리 하나 차이로' 우승을 놓쳤기 때문이다. 돈을 따서 선물을 사들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가겠다는 허황된 꿈도 깨지고 남자는 좌절한다. '머리 하나 차이로' 돈과 사랑을 날려버린 사내의 운명은 어쩐지 서글프다. 가사 중에 이런 내용도 있다.

"머리 하나 차이로 져 버렸네 / 내 삶을 천 번쯤 포기하는 건 문제도 아냐 / 왜 살겠어?"

내가 말띠여서 그런가? 나도 말 머리 하나 차이로 운명이 달라진 사람인 것 같다. 말 머리 하나 차이로 삶의 나침반이 바뀌었고, 말머리 하나 차이로 기쁨과 슬픔을 뒤바꿨고, 어느 날 말 머리 하나 차이로 운명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났다.

노래의 주인공도 나도 다시 돈을 걸 것이다. 머리 하나 차이로 또 무엇인가 달라진다면 얼마나 멋진 인생이겠는가. '포르 우나 카베사'의 마지막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일요일에, 정말 그럴듯한 말(馬)이 있다면 / 난 모든 걸, 또 돈을 걸겠지. 어쩌면 좋아?"

`탱고의 신`이라고 불렸던 가수이자 작곡가 카를로스 카르델의 앨범.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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