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다움' 부수고 미래로 가는 여성 정치인들

김미향 2021. 1. 2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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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대표 성추행 파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폭력에 당당히 맞서는 장혜영 의원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의 당당한 모습은 저를 비롯한 한국의 여성들에게 커다란 위안이자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25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이같이 올렸다. “장혜영 의원이 일상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신 대표의 말에는 동료 정치인에 대한 응원과 지지 그리고 여성폭력 피해자로서의 따뜻한 연대가 담겨 있다. 신 대표는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소년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성폭력을 겪었다'는 장 의원의 말을 공감할 것”이라며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살아남은 여성들이 더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싸우고 이겨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로 가는 여성 정치인들

신 대표가 장 의원에게 보내는 응원이 뜻깊은 것은 직업 정치인의 정체성과 여성폭력 피해자의 정체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전인 22일 전 녹색당 당직자가 준강간치상 혐의로 부산지법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신 대표는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다움’ 공식에 따르지 않았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구갑에 출마하며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밝혔고 예전과 다름없이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가 속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25일 “장혜영 국회의원의 중단 없는 의정활동을 응원합니다”라고 논평을 냈다.

울거나, 약하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것 같은 모습. 바로 한국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를 두고 떠올리는 ‘피해자다움’이다. 최근 두 여성 정치인이 보여준 모습은 다르다. 25일 장혜영 의원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며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에 공개적으로 책임을 물었다. 장 의원은 “제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임을 밝힙니다. 성폭력에 단호히 맞서고 성평등을 소리높여 외치는 것은 저의 정치적 소명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장혜영 의원이 올린 입장문. 트위터 화면 갈무리

동료 여성 정치인들은 ‘피해자다움’을 거부하고 ‘정치’라는 일상을 이어가는 장 의원의 행보에 지지를 보냈다. 송명숙 진보당 공동대표는 이날 논평을 내어 “성폭력 사건에 맞선 장혜영 의원의 용기 있는 선언과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회복 투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도 “이 모든 일을 밝히기로 결심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 누구보다 힘쓰고 계신 정의당 장혜영 의원께 존중과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는 “장혜영 의원의 용기 있는 결정에 깊은 지지를 보낸다. 그 동안 정의당에서 성평등을 달성하고자 고군분투했을 여성들의 노력이 더는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책임있는 자세가 해결 실마리

“명백한 성추행의 가해를 저질렀습니다. 피해자께 다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제 책임에 관해 저는 세 가지 방법으로 저에 대한 징계를 하기로 정하고, 피해자 및 피해자 대리인에게 의사를 전달했습니다.”(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 입장문) 이번 정의당 당대표 성추행 사건은 자신의 성추행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즉시 사과했으며, 사건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는 점에서 과거 지자체장들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과 구별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부인하며 오랜 법정 싸움을 이어갔다. 대법원은 안 전 지사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최종 유죄 판단을 내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참모진에게 이를 시인하는 뜻을 내비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피해자는 막대한 2차 피해에 시달리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그나마 이번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된 것이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태섭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에 대하여’ 글을 올리고 “진영 내 성폭력이나 성차별 문제를 지적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정의당의 사건 공개와 후속 절차에는 평가할 점이 있다고 본다”며 “지금도 친여 시민단체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폭력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에 대한 살인죄 고발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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