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퇴

이동훈 논설위원 2021. 1. 26.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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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여성운동가들이 나서 운동권 내 성폭력을 없애겠다고 한 것이다. 이런 위원회까지 만들 정도로 운동권 성폭력이 많았다. 두 차례에 걸쳐 ‘가해자’ 17명 실명이 공개됐다. 대학 총학생회장, 노조 간부, 시민 단체 인사 등이었다. 수배 중에 ‘보위’를 요구하며 성폭행하거나 성폭행 뒤에 “나와 잔 것만으로 영광이라 생각하라”고 했다는 등 진보 진영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첫 미투 운동이었지만 해피엔드는 아니었다. 사건은 미봉됐고 실명 공개자들은 위원회를 고소했다. ‘프락치 아니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2008년 12월 전교조 여교사가 수배 중이던 민주노총 위원장을 조직 지시로 집에 숨겨줬다. 민주노총 간부가 이 여교사를 성폭행하려 했다. 여교사가 전교조 위원장에게 사실을 알리자 그 위원장은 “고소하지 말고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자”고 했다. 피해 교사는 조직적 2-3차 가해에도 시달렸다 그 교사는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조직의 명을 따르지 않는 타도 대상이었다”고 했다.

▶진보 논객 강준만씨는 ‘오빠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썼다. 실체는 가부장제적 남성 중심인데 입으로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일부 진보 인사를 가리키는 용어도 될 것이다. 여성학자 전희경씨는 “운동권에는 성폭력을 묵인·은폐·재생산하는 독특한 논리가 작동해 왔다”고 했다. ‘성폭력 때문에 조직이 망가져선 안 된다’는 이른바 조직 보위론이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성추행 사건으로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피해자는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이다. 김 대표는 식사 자리에서 장 의원의 신체를 접촉했다고 한다. 피해자 장 의원의 입장문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가해자가 당대표라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당대표이기에 더더욱 무관용의 태도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영원히 피해 사실을 감추고 살아간다면, 저는 이 사건에 영원히 갇혀버릴 것”이라고 했다. 운동권식 조직 보위론을 거부한 것이다.

▶이런 흐름과는 완전히 딴판인 곳이 민주당이다. 민주당 인사들은 성추행이 공개될 위기에 몰리자 극단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시장을 “맑은 분”이라고 감쌌다. 민주당은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서울시 전역에 걸었다. 대형 조문소를 설치하고 조문을 받았다. 박원순에게 피소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모조리 면죄부를 받았다. 피해자는 ‘피해 호소인’ 소리를 들으며 타도 대상이 됐다. 세계의 성추행 가해자 중 박원순 전 시장처럼 칭송받고 좋은 대우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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