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3] 황후·귀족 때려잡고 식량 푼 네로.. 민중은 한때 환호했다
미국을 흔히 로마제국에 비교한다. 간혹 자질이 형편없는 지도자가 등장하여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현상도 비슷하다. 로마 황제 중에 용렬한 인간들은 수도 없이 많으나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재위 서기 54~68년)만큼 세상을 어지럽힌 인물도 드물다. 네로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연결된 유력 왕실 가문 출신이지만, 궁중 암투가 난무하는 시대 상황에서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고난을 겪었다. 그가 네 살 때 죽은 아버지는 독살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 아그리피나 역시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들을 겪었으나, 끝까지 버텨서 결국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이 많은 남편이 죽은 다음에도 안전하게 권력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그리피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미국, 흔히 로마제국과 비교돼
우선 세네카와 손을 잡았다. 탁월한 철학자·연설가이며 궁정 내 영향력이 큰 인물인 그에게 아들 교육을 맡겼다. 곧이어 황제의 딸 옥타비아와 약혼시켰고, 얼마 후에는 아예 황제의 양자로 입양시켰다. 이후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 만한 인물들을 제거해 갔다. 몇 년 새 살해된 원로원 의원만 30명에 달했다. 빨리 제위를 확보하려면 60대의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죽기를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빨리 없애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아그리피나의 주도로 독버섯과 독 묻은 깃털을 사용해서 늙은 황제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바라던 대로 네로가 제위에 오르자 아그리피나는 사실상 공동 통치자로서 권력을 휘둘렀다. 제국 운영의 중요한 실무 처리를 하고 사절도 접견했다. 당시 발행한 화폐에는 황제와 어머니가 동격으로 그려져 있을 정도다. 그러나 모후가 과도하게 국정에 간여하는 데 반대한 세네카와 호위대장 부루스가 그녀를 견제하여 실권을 빼앗았다. 네로의 교육을 담당했던 세네카는 젊은 황제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방탕한 기운을 용인하고 방치했다. 음악에 소질이 있고 특히 무대에 오르기를 좋아한 네로는 직접 연극배우로 나서기도 했다. 당시 배우는 오늘날과 달리 가장 수치스러운 직업으로서 창녀와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행위는 실로 파격이었다. 그렇지만 세네카는 여전히 덕성스러운 삶과 정의로운 통치를 강조하는 네로의 연설문을 작성했다.
‘네로의 초기 5년(Quinquennium Neronis)’ 통치는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후반 통치기에 비하면 그럭저럭 원만한 편이고, 건축 분야에서 성과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정 내부에서는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네로로서는 권력을 놓지 않고 사사건건 간섭하려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많으나 네로가 벌인 악행으로 판단하는 자료가 많다. 고대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사고로 위장하여 호수 한가운데에서 아그리피나가 탄 배를 침몰시켰다. 그런데 수영에 능한 아그리피나는 헤엄쳐서 살아나왔다. 아들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지만,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사고를 당했지만 무사하다’는 편지를 아들에게 보냈다. 편지를 받은 네로는 당황스러워했다. 곧 참모들과 협의한 후 군 병력을 보내 어머니를 살해했다. 공식적으로는 어머니가 아들을 살해하기 위해 자객을 보냈다가 실패하자 스스로 자결했다고 발표했다.
다음 차례는 황후 옥타비아였다. 황후에 대한 애정이 없던 네로는 다른 여성과 연애하거나 남성과 동성애를 즐겼다. 결국은 죄 없는 옥타비아에게 간통죄를 씌워 처형했다. 그의 치세 동안 계속 정적들과 원로원 의원들을 모함하여 살해했다. 그런데 일반 국민으로서는 억압적인 귀족들을 제거하는 것이 나쁠 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황제의 인기가 올라갔다. 네로는 더욱 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대중 영합 정책을 폈다. 집권 후반기에는 수많은 축제를 개최하고, 식량과 선물을 배급했으며, 공공 건축 사업을 크게 펼쳤다. 거대한 황금궁전(domus aurea) 조성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네로는 평민을 보호하고 문화 사업을 추진하는 척할 수 있었다. 정치적 갈등이나 재정 문제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었다.
기독교 신자 산 채로 불구덩이 던져
그의 치세 중 가장 큰 사건은 64년의 대화재였다. 로마 시는 일주일 동안 불에 탔다. 네로가 멋진 궁전을 짓기 위해 일부러 가난한 동네에 불을 질렀고, 불타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수금(竪琴)을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현대의 연구자들은 낭설에 불과하다며 부정한다. 당시 로마 시는 목조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화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황제가 직접 저질렀든 아니든 초대형 사고는 황제의 평판을 깎아먹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 당시 로마 시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던 기독교도들에게 잘못을 돌렸다. 타키투스에 의하면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체포되어 짐승에게 던져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졌다고 한다.
화재 이후 네로는 본격적으로 도시계획을 밀어붙였다. 황금궁전은 이 시기에 거의 완공했다. 당연히 재정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지방에 기여금을 강요하고, 데나리우스 은화의 은 함유량을 3.8그램에서 3.3그램으로 낮추고 은의 순도도 낮추는 식으로 화폐개혁을 감행했다. 이러니 정치와 경제가 엉망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다. 로마제국을 구해야 한다는 인사들이 역모를 꾸몄지만 대개 발각되어 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자리를 내놓고 떠나 있던 세네카도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네로의 자살 명령이 떨어져서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네로는 두 번째 부인을 죽인 후 스포루스라는 소년을 거세시키고 여성으로 분장시켜 결혼식을 올렸다.
재위 마지막 해인 서기 68년, 각지에서 봉기가 터져 나왔고, 일부 지사와 장군들이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공포에 사로잡힌 네로가 목숨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한밤중에 일어나 보니 호위대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도망가고 궁전이 텅 비었다. 심지어 자신을 칼로 찔러 살해해 줄 검투사조차 찾을 수 없었다. 테베르 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그것도 못 하고 시내의 한 저택으로 몸을 피했다. 이때 원로원에서 네로를 광장에서 때려죽이는 방식으로 처형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원로원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가다가 사태를 순조롭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네로를 살려두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 네로를 데리러 사람들을 보냈는데,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것으로 착각한 네로는 서둘러 죽음을 결정했다. 스스로 자결할 용기도 없어서 끝까지 자신을 지킨 비서에게 살해를 부탁했다. “내 안의 예술가가 죽는구나!” 죽으면서 네로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네로 때문에 로마가 망하지는 않았다. 잘못된 지도자가 한때 분탕질을 쳐도 제국 시스템이 건재했기에 로마제국은 그 후 400년을 더 유지할 수 있었다.
<네로는 죽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과 귀족, 상층 시민들은 네로의 죽음을 반겼지만, 서민층과 노예, 극장가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다. 그동안 네로의 기행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네로 시대를 그리워하는 민중의 꿈이 ‘네로의 귀환(Nero Redivivus)’ 전설을 낳았다. 네로는 죽지 않았으며 동방의 한 동굴에서 잠자고 있다가 어느 날 대군을 이끌고 돌아온다는 식의 이야기가 이후 100년 가까이 지속했다. 극심한 탄압을 받던 기독교 신자들은 다른 의미에서 네로의 귀환을 믿었다. 네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이며, 신의 분노를 유발하여 대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도 그렇게 해석했다. 얼마 후 얼굴이 네로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용감하게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이 네로라고 자처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조만간 다시 보자”는 퇴임 연설을 한 미국의 전임 대통령과 지지자들도 귀환의 희망을 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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