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엄마의 배추전
겨울이 오고 눈이 소복이 내린 날 아침 문득 2018년에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겨울이면 한 번씩 생각나게 한다.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고향 집으로 내려가 사계절을 보내면서 철에 맞는 식재료를 만나게 된다. 어렴풋이 어깨너머로 배운 어머니의 조리법을 떠올리고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 먹으며 허기졌던 몸과 마음을 차츰 회복해가는 내용이다.
조물조물 밀가루를 반죽해서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겨울 눈 덮인 밭에서 뽑아 온 배추로 배추전을 부쳐 먹는다. 영화를 가만히 보다 보면 어쩜 저리도 쉽게 조리를 할까 싶다.
음식 연구를 하다 요리 강의를 했다. TV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도 배우러 왔다. 사연도 다양했다. 시어머니 잔소리를 피해 요리하는 동안을 안식처 삼는 이도 있었고, 인맥을 쌓으려 오는 이도 있었다. 아내와 다투고 난 뒤, 혼자서라도 된장찌개는 끓여 먹고 싶어 요리 교실을 찾아온 이도 있었다. “요리까지 잘한다”는 완벽주의 성향의 수강생도 있었고, 소셜 미디어 ‘사진발’을 위해 오는 이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지켜만 보며 남들이 해주기만 기다리는 이도 있다. 식재료가 생명이라면, 요리는 삶이었다. 요리 속에 사람이 보였다.
‘삼시세끼’의 노고를 알기 때문에 예능도 나왔을 것이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기에 어쩌면 가장 귀함을 모르고 지나갔을 그 순간들. 우리는 TV에 나온 출연자들의 손맛 담긴 칼질을 보며, 마법처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솜씨를 보며 감탄만 하고 지나기 일쑤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밥상 위에 또다시 차려지는 한 상. 사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그쪽 방면에 재능 있는 연예인들이 대가에 맞는 예능 노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까.
어린 시절 엄마의 배추전 생각이 났다. 마른 새우를 다져 넣고 구우면 새우깡 맛이 나 그렇게 고소할 수 없었다. 한참 배추전을 부치고 있는데,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남이 차려 준 음식이 젤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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