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칼럼]통합의 두 가지 조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21. 1. 26.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먼저 이 칼럼은 어떤 편향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통합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반추해 보고 싶은 게 이 글을 쓴 이유다. 그 생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통합은 갈등과 짝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갈등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노사갈등을 포함한 계급갈등, 이념·세대·지역갈등 그리고 인종갈등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갈등들을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게 바로 통합이다. 대체적으로 갈등이 심각한 나라일수록 갈등에 상응하는 통합에 대한 요구가 높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대사회가 기본적으로 갈등사회라는 점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의 가치와 이익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갈등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다원적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갈등을 적절히 조정하는 데 있으며, 통합 역시 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둘째, 근대사회에서 통합에 대한 고전적인 정치적 견해를 선보인 이는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다. 정치가이자 소설가였던 디즈레일리는 1845년 발표한 <시빌 또는 두 국민>이란 소설에서 영국의 ‘두 국민(two nations)’, 즉 부자와 빈자를 ‘한 국민(one nation)’으로 통합해야 함을 역설했다. 디즈레일리는 토리당(현 보수당) 출신의 제국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였다. 그가 통합을 내세웠던 것은 19세기의 만연한 불평등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하여, 당시 보수가 변화와 변혁을 앞세운 진보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기득권 옹호를 넘어선 통합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요구됐다. 이처럼 서구사회에서 통합은 진보라기보다 보수의 가치였다.

셋째, 현대사회에서 통합에 대한 고전적인 학술적 견해를 선보인 이는 영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록우드다. 록우드는 ‘체계통합’과 ‘사회통합’을 구분했다. 체계통합이 한 사회가 재생산되기 위한 하위 부분들의 기능적 결합을 뜻한다면, 사회통합은 사회의 조직원리에 대한 구성원들의 규범적 동의를 의미한다. 후자의 사회통합은 특히 사회갈등을 제어하는 동시에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규범을 개인적 의미로 내면화시킴으로써 사회에의 결속을 제고시킨다. 사회통합이 약화되면 자기 사회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고갈됨으로써 결국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빠지게 된다.

넷째, 주목할 것은 이 통합과 정당이 갖는 긴장의 관계다. 정당은 본디 부분 체계다. 다시 말해 정당은, 국민 정당을 표방하더라도 특정 집단의 가치와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명히 드러내는 게 선거 과정이다. 정당은 더 많은 득표를 위해 계급·이념·세대균열에 기반한 ‘갈라치기’를 시도한다. 선거 막바지에 가서야 중도를 겨냥한 ‘국민통합’을 내걸지만, 갈라치기가 전제되지 않은 국민통합의 사례는 어느 나라든 찾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숙명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사회통합을 높이기 위한 과제들로 손꼽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갈등 사안에 대한 진영 논리의 탈피와 관용 정신의 발휘, 갈등의 ‘조장자’가 아니라 ‘조정자’로서의 정당과 언론의 역할 제고, 정부의 중립적인 태도 유지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사회 갈등의 양축을 이루는 계급갈등과 이념갈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다.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완화시킬 경우 통합을 약화시키는 갈등은 언제든지 다시 강화될 수 있다.

새해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통합이 중대한 과제로 부상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고, 코로나19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이익공유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전자가 정치적 영역에 연관된 쟁점이라면 후자는 사회경제적 영역에 관련된 이슈다. 사면 논의는 이제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이익공유제를 제기한 민주당은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상생기금 조성으로 그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오늘날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한 제도적 해법 없이 통합을 이루기 어렵다는 게 하나라면, 통합에 다가서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선 국민 다수의 동의라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는 게 다른 하나다. 우리 사회가 현재 디즈레일리가 말한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보수와 진보의 ‘두 국민 사회’라면, 이를 ‘한 국민 사회’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정권적 과제를 넘어선 국가적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