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정치시평]서울시장 선거가 시들한 이유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1. 1.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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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의 명단을 보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여당의 우상호·박영선, 야당의 나경원·오세훈·안철수 등이다. 누가 여론조사 1위라는 둥 누가 경선에서 유리하다는 둥 하지만, 어쩐지 시들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책이나 공약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는 오히려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돋보인다. 그의 공약에 찬성하든, 안 하든 분명하게 제시하고 평가받겠다는 자세는 눈에 띈다.

후보들의 공통점이라면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르게 이어지고 있는 86세대 정치적 기득권층에 속한다는 점, 오랫동안 전업으로 정치를 해왔지만 유명하다는 것 말고 그 정치적 기여가 무엇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신선한 제3의 후보를 기다리게 된다. ‘영입’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정치에서 영입의 역사는 길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부터 본인은 절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에 ‘소환’ 혹은 ‘영입’되었다. 박근혜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한나라당에 영입되었고, 이명박씨는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성공담 덕분에 민자당에 영입되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10년째 제3후보 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도 IT업계에서의 명성을 기반으로 소환되었다. 그러고 보면 분명한 권력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세를 키우며 마침내 그 권력을 획득한 대통령은 YS와 DJ, 그리고 노무현이 마지막이다.

보통 정치전문가들은 영입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게 본다. 다른 분야에서는 성공했더라도 정치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신선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선된 이후 무슨 일을 벌일지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후보 명단을 보다가 답답해지는 이유는 엄청난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또 누군가의 혜성 같은 등장을 기다리든가, 그게 싫다면 별로 내키지 않는 선택을 억지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왜 기대감을 주는 새로운 정치지도자는 등장하지 않는 걸까.

한국 정치엘리트의 충원 과정을 긴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일본·프랑스 모델에서 영국 모델로 변해가면서 말로는 독일 모델을 추구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관료의 관계를 보면, 일본과 프랑스는 단연 관료가 강세인 국가들이다. 일본이 고속성장의 신화를 쓰던 시절 그 힘은 대장성 관료들에게서 나온다고 했고, 이것은 한국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는 관료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동안 주요 정치인과 후견관계를 맺고, 관료직이 끝나면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 가운데 대다수가 이 길을 걸었다. 관료들은 정치적 미래를 염두에 둔 채 정책적 판단과 정무적 판단을 동시에 한다.

한국 정치가 독일을 닮아가겠다고 선전해온 지는 10년이 훌쩍 넘었다. 독일은 정치의 사회적 대표성이 높고 정치인 충원의 문호가 개방적이며 연정을 통해 정책의 장기적 지속성을 보장하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하르츠 개혁을 벤치마킹하고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찾을 수 없고, 개정된 선거법은 위성정당이라는 괴물을 낳았을 뿐이다. 말로만 독일을 닮아가겠다고 선전하면서 막상 닮아간 것은 영국 정치이다. 대처 이후 영국 정치의 주요한 특징은 정치가 전문직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영국 정치에서 정치인들이 주로 임명되는 내각은 총리를 자문하고 관료는 내각을 자문하는 관계였지만, 대처 이후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장관들은 원칙에 충실한 관료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고, 관료들은 국가의 큰 정책을 보기보다는 흠 잡히지 않는 미시경영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분야의 엘리트들은 정치에 뛰어들기 어렵고 정치는 그들만의 전문직이 되었다. 영국은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효율화의 맥락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지만, 한국은 보수정부나 진보정부 할 것 없이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

프랑스처럼 유능한 관료의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독일처럼 사회적 대표성을 높이는 것도 아니고, 영국처럼 효율화를 추구하는 것도 아닌, 여러 제도가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정치적 기득권층은 국회의원 하다가, 청와대 수석 하다가, 장관 하다가, 지자체장 하다가, 다시 국회의원 하는 거대한 회전문에 들어가 있다. 모두가 아까 회전문으로 들어갔다가 방금 회전문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서울시장 선거가 시들한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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