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19세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들
[경향신문]
열아홉 살이 된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빨리 어른이 되는 거 같아요. 나는 그의 말에 쉽게 수긍하면서 열아홉 살이면 다 컸다고, 어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섣부르게 말할 뻔했다. ‘어른’이란 아이보다 ‘성숙’한 존재로 규정짓고 대꾸할 뻔했다. 다행히 내 말보다 그의 말이 빨랐다.
“그래서 불안하고, 쓸쓸한 거 같아요.”
그가 말하는 ‘어른’은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와 자신의 두 발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였다. 나는 말간 열아홉 살 어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특성화고등학교 뷰티디자인학과에 다니는 그는 작년 봄에 만났을 적에 미용 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 준비를 한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미용 관련 일이 적성에 맞을 줄 알았는데, 머리를 매만지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그는 키가 좀 자랐구나 싶었는데, 키만 자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대학교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취업을 바로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어른들은 일하고 돈 벌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우리들은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그가 말하는 종결어미 ‘같아요’는 추측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교복을 벗으면 진짜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인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회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을 어른이라고 규정짓는다면, 그가 경험한 어른은 고되고 힘들었다. 두 달 동안 주말에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미용사 여섯 명의 조력자 역할을 혼자 해야 했다. “미용사 한 명에 스태프 한 명이 붙어야 하는데, 제가 혼자 했어요. 여섯이 스타일이 다르니까 그걸 기억하고 맞추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쉬는 시간이 있어도 눈치가 보여서 쉴 수도 없었다. 시급 1만원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최저 시급에 맞췄다면서 봉투를 내밀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받았다. 그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전에 어른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교복을 입은 그에게 책임을 떠안길 때는 ‘이제 너도 어른이다’라고 했을 테고, 권리를 빼앗을 때는 ‘아직 학생이지 않냐’고 했을 것이다. 사회에서 그는 어른도 학생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요즘 네일아트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대학 뷰티학과 입학 준비도 하고 있다. 대학을 선택한 건 어른이 되는 걸 잠시 유보하기 위해서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고 한다.
“아르바이트한 뒤에 대학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지요. 현장에 바로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요. 취업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는 겁나서요. 제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의 두려움은 당연하다. 특성화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순간 그의 미래에 답을 얻은 건 아니니까. 특성화고등학교가 그의 특성이 되는 건 아니니까.
지난해 직업계 고등학교 졸업생 9만여명 중 3만8000여명은 진학했고, 2만5000여명은 취업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의 숫자도 2만여명이나 된다. 어쨌든 진학하지 않은 이들은 사회에 나와서 어른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내가 만난 열아홉 살처럼 세상으로 선뜻 나가기 겁났을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지 고민할 것이다. 세상이 진학한 이들만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대학생이 아닌 일하는 청년들은 쓸쓸하게 어른이 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열아홉 살이 살아가는 얘기를 듣고 돌아온 날, 얼마 전에 사둔 책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허태준)를 꺼내 들었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려왔다”는 문장을 보고는 울컥했다. 올봄에도 교복을 벗자마자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들이 세상에 나온다. 세상은 그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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