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5인 미만 사업장과 조국
[경향신문]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감독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특히 취업에서 열세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있어서 근로조건의 보호는 근로기준법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이 적용되고, 근로시간의 제한 및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부당한 해고로부터의 보호 등 주요 조항의 적용이 배제되어 있다.”
2008년 4월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법령 및 정책 개선 권고 결정’에서 서두에 밝힌 내용이다. 결정문 마지막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조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당시 인권위는 1999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언급하면서, 이제는 ‘근기법 적용 확대를 위한 전반적인 여건과 환경이 성숙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13년이 지난 2021년 1월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다. ‘전 법무부 장관’이 된 조국은 페이스북에 법 시행 후 실태조사를 하여 문제가 확인되면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5인 미만 노동자들은 언제나 거대양당의 정쟁 속에서 거래되는 인질이다. 민주당은 인질들에게 나중에 반드시 구해주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약속의 날은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도에 구멍이 생겼다고 평론할 뿐이고, 기업들은 5인 미만으로 사업장을 쪼개고 위험을 전가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자 약속이나 한 듯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죽음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하수구처럼, 우리 눈에 보기 싫은 사람들과 문제들이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구멍을 타고 아래로 흐른다. 산재사고의 32.1%가 이 구멍에 차곡차곡 쌓인다.
조국의 위치가 달라졌으니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를 방치해둔 노동운동 역시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탄력근로시간제와 단체협약 3년의 독소조항이 담긴 ILO비준 관련 법안이 통과된 것을 두고 ‘문재인 정권하에서 노동인권이 한 단계 전진한다’고 자평한 것은 안타깝다. 문재인 정권을 왼쪽에서 비판하는 진보를 ‘혀’로, 정부·여당을 실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로 묘사하기까지 했다. 조국이야말로 의미 있는 법 연구와 국가인권위원으로 활약한 진보적 ‘혀’였지만, 지금은 정권 수호를 위한 손가락질만 한다.
한때 노동자를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기득권이 된 진보 엘리트들에게 ‘혀’라는 비난을 듣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 두려워할 것은 진보 정치가 함께하려 했던 민중과 괴리되는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이야 정치생명을 끊을 수 있는 검찰이 무섭겠지만, 노동자들은 목숨이 끊길 수 있는 일터가 무섭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검찰로부터 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게 한으로 남은 것 같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위기는 그를 지지했던 노동자·서민을 지키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정권이 명운을 걸고 수행해야 할 개혁이 무엇인지 절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산재사고 유가족들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과, 청와대로 걸어가고 있는 김진숙에게 묻기를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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