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문비어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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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비평가 윌리엄 해즐릿은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베토벤은 "세상은 아첨을 바라나 진정한 예술은 완고해 아첨이라는 틀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베토벤은 아첨하는 음악을 작곡하지 않았으나 권력자에게 많이 헌정했다.
권력자에게 바치는 아첨을 흔히 용비어천가에 빗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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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진술은 무조건 믿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아첨 효과(flattery effect)’라고 한다. “최고를 꿈꾸지만 최고가 아닌 자부심 강한 사람만큼 아첨에 잘 넘어가는 사람도 없다.” 스피노자의 경구다.
권력자에게 바치는 아첨을 흔히 용비어천가에 빗댄다. 정권에 따라 ‘노비어천가’, ‘박비어천가’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특히 박근혜정부 때는 청와대 참모들이 아첨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실권을 행사해 문고리 3인방, 십상시라는 말이 회자됐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의 전조였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아첨의 수위가 역대급이다.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총선 직후인 지난해 5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태종 같다”고 하자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남은 임기 세종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나라가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여권 출마자 사이에서 ‘문비어천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우상호 의원은 “든든한 대통령”이라고 칭송했다. 경선 열쇠를 쥔 열성 친문 당원들의 표심을 잡겠다는 의도다.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는 최근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임금님이 아닌 대통령으로 돌아오긴 어려울 것 같다”며 팬덤 현상이 민주주의 걸림돌이라고 경고했다.
용비어천가는 새 왕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육룡(六龍)’ 찬양으로만 돼 있지 않다. ‘선조의 원대한 뜻을 잊지 마십시오’로 끝나는 물망장(勿忘章)을 부록처럼 붙여 제왕의 도리를 당부했다. 아부하는 신하를 멀리하고 바른말 하는 신하를 중시하며 백성의 언로를 막지 말라는 규계(規戒)의 메시지다.
허범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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