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故박원순 성적 언동, '성희롱' 해당..피해자 주장 사실 인정"

한기호 2021. 1. 25. 21: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휴대전화 포렌식, 참고인 진술 등으로 성희롱 판단 충분"
비서실의 성희롱 방조는 불인정.."성인지 감수성 낮다" 지적
동료 비서 성폭행 사건 들어 서울시 2차가해 추궁
朴 피소사실 유출 의혹엔 "경위 확인 어렵다" 선그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25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등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 아울러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를 결정했다.

인권위는 이날 전원위원회를 열고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 안건을 단독 상정, 5시간여 심의를 거쳐 의결했다. 전원위에는 최영애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 이준일 비상임위원을 제외한 비상임위원 5명 등 총 9명이 참석했다. 인권위는 11명으로 구성되며 전원위는 재적 위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인권위는 성추행 피해 여비서가 요청한 직권조사 결과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 사건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의 일정 관리 및 하루 일과의 모든 것을 살피고 보좌하는 업무 외에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을 대리처방 받거나 복용하도록 챙기기, 혈압 재기 및 명절 장보기 등 사적영역에 대한 노무까지 수행했다"고 확인했다.

박 전 시장의 성적 언동 여부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 및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과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이 같은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인권위는 "이는 피조사자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완전한 사실관계 인정과는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 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위 인정 사실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시장 비서실 직원들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묵인·방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동료 및 상급자들이 피해자의 전보 요청을 '박 전 시장의 성희롱 때문'이라고 인지했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는다"면서도 "지자체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이 성희롱의 속성 및 위계 구조 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라고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서울시에 '2차 가해'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해 4월 비서실 동료 직원이 피해자를 성폭행한 사건을 '4월 사건'으로 지칭하면서 "이를 최초로 인지한 부서장은 사건 담당부서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는 등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한 전 서울시 파견경찰은 피고소인(가해자)의 요청으로 지인에게 피해자와의 합의 및 중재를 요청했다. 서울시는 피해자가 사건 조사요구와 함께 2차 피해에 대한 조치를 요청했음에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했다며 "특히 서울시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일반적 성폭력 형사사건 또는 두 사람 간 개인적 문제라고 인식한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낸 바, 비교적 잘 마련된 서울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연루된 박 전 시장의 '피소사실 유출' 의혹에 관해 "피소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된 경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면서 "경찰청, 검찰청, 청와대 등 관계기관은 수사 중이거나 보안 등을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결과는 입수하지 못했으며, 유력한 참고인들 또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하지 않는 등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선을 그었다.

인권위는 종합의견에서 박 전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젠더정책을 실천하려 했기에 그의 피소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고 밝혔다. 직권조사 결과에 관해선 "우리 사회의 성평등 수준이 외견상 많은 진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고용, 정치 등 주요 영역에서의 성별격차는 여전하고, 성희롱에 대한 낮은 인식과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향후 실효성 있는 구제 뿐 아니라 차별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병행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인권위의 결과 발표는 피해자 측이 지난해 7월 서울시 자체 진상규명조사에 불참 의사를 밝히고 직권조사를 요청한 지 약 반년 만에야 나왔다. 직권조사단은 조사 기간 박 전 시장의 성희롱 행위, 서울시의 성희롱 등 피해에 대한 묵인 방조 여부, 성희롱 관련 제도 등을 중점적으로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조사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와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을 권고할 방침이다.

앞서 인권위 회의가 진행될 동안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로 구성된 '서울시장 위력성폭행사건 공동행동'은 "정의로운 판단을 해달라"며 인권위의 '제대로 된 응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이어갔다. 피해자는 안경옥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가 대독한 발언문을 통해 "저의 마지막 희망은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과 발표"라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으로부터 제 인권 침해를 확인받는 것이, 이 혼란 중에 가해지는 잔인한 2차 가해 속에서 저의 심신을 소생시킬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