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책문 -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김승환의 내 인생의 책 ②]
[경향신문]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2020년에 책을 펴냈다고 하면 모두가 믿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로 ‘정조 지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가 그것입니다.
옮긴이 신창호에 따르면 이 책은, 정조가 쓴 <홍재전서>에 실려 있는 <책문>을 독해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문은 최고지도자가 신하들을 상대로 국가의 정책에 관한 질문을 하며 대책을 요청한 것을 말합니다. 이 책에 실린 정조의 책문(策問) 78가지는 국정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중요한 경전과 사서를 통독한 정조가 던지는 질문에는 질문의 논거와 자료가 정확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책 전반에 걸쳐 정조의 통치 철학의 뿌리였던 애민(愛民) 정신이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사실 부족함 없이 지내는 몸이다. 하지만 최고지도자 군주로서 대궐에 있다 보니, 백성이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해 걱정하는 일은 없는지, 굶주린 백성을 구휼할 때 관리들이 농간하지는 않는지, 곡식을 나누어 줄 때 백성이 실제로 혜택을 받는지, 질병을 앓는 사람은 요양을 제대로 받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나는 백성들이 굶주리면서 구휼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 자신이 그런 지경에 처한 것처럼 상심하고 있다.”(336쪽)
정조는 자신이 구중궁궐에 있어 백성의 삶을 잘 모른다고 했지만, 전국 곳곳에 있는 농산물 곳간까지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물건과 물건을 이어주는 육로 운송수단과 해상 운송수단의 실태마저 알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책문을 과거시험에 직접 출제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시험을 정책의 대안을 찾는 계기로 활용한 것입니다. 정조는 권세가들 때문에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이를 들춰내려 책문(策問)을 활용했던 겁니다. 정조의 책문에는 시대적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조의 책문이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구중궁궐에 살았으나 백성의 고달픔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정조의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김승환 | 전북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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