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국 칼럼] 하이에크와 하위징아가 기겁할 나라
후세의 사가(史家)들이 문재인 정권에 관한 경제사를 쓴다면 어떻게 서술할까. 아마도 편가르기 정책·입법이 난무하던, 그래서 나라가 기울었던 시대였다고 기술할 것이 틀림이 없다. 실제로 집권 4년 가까이 문재인 정권은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노동 세력은 떠받들고, 소득을 늘리고 일자리를 낳는 등 국민에게 번영을 안겨주는 기업들은 박해했다. 중소상공인들은 약자이기에 국가가 보호·육성·지원해야 한다고 문 정권은 목소리를 높여왔다.
편가르기 정치의 예는 차고 넘친다. 임차인이 어려우니 임대료를 감면하는 입법, 중소기업이 어려우니 이자를 감면하는 정책 등, 시장과정에 개입하는 모든 정책은 편 가르기가 필연이다. 그런 정책의 백미(白眉)는 코로나19 사태로 이익을 본 계층과 업종의 돈을 거두어 피해를 본 측에 나눠주자는 '이윤공유제'다. 돈 거두기에 거론되는 대상은 반도체·가전 등 주력 제품의 판매 호조로 이익을 낸 삼성·SK·LG 등, 흥미롭게도 집권층이 적(敵)으로 취급하며 온갖 규제를 들이밀던 대기업들이 아닌가!
네덜란드의 유명한 사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는 문재인 정권의 정치관이 히틀러의 나치즘을 열렬히 지지했던 독일의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3)의 그것과 쏙 빼닮았다고 기겁할 것이 틀림없다.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을 적과 친구의 구분에서 찾으면서 법의 지배가 아닌 힘의 지배를 예찬했던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힘을 가진 주권자가 동지를 규합하여 적을 누르고 통치하는 게 정치라고 슈미트는 이해했다. 적은 제거의 대상이지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기업규제 3법, 중대재해법의 입법을 변경·철회해 달라는 기업들의 애달픈 호소에 대한 집권층의 잔인한 거절이 슈미트의 '친구와 적'의 원칙에 따른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가 슈미트를 비판했던 것처럼 '친구와 적'의 원칙에 따른 편가르기 정치는 인간 이성의 타락에서 비롯된 "야만적이고 병리적인 망상" 일 뿐이다.
공유, 연대, 사회적 책임 등, 편 가르기 정치를 포장하는 멋진 말을 들으면 이제는 하이에크가 기겁할 것이다. 그런 포장은 첫째로 이윤공유제 포용경제 등과 같은 공동목표를 중심으로 결속·유대하기를 적에게 강제하기 위해 모든 독재자들이 사용했던 방법이고, 둘째로 그런 멋진 말을 미루어 본다면 문재인 정권의 정신구조는 아직도 소규모의 그룹생활에서 습득했던 '석기시대 정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은 사유재산을 존중할 줄도 모르는 사회주의의 야만적 태도다. 이윤· 부동산공유제, 주택거래 허가제 등과 같이 사적소유의 소중함을 무시하는 정책도 진화가 멈춘 원시인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시사회의 척박한 삶을 극복하고 오늘날 전대미문의 문명화된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된 건 야만적 태도가 아닌 자기책임, 자립심, 인격·재산존중 등 문명화된 에토스 때문이었다는 자유주의의 거성 하이에크의 탁월한 인식을 주지해야 한다.
하이에크가 기겁할 또 하나는 법치에 대한 문 정권의 혐오다. 이것도 슈미트와 닮았다. 문 정권의 머릿속에는 법치라는 가치가 들어설 자리도 없다. 하이에크가 '자유의 헌정론'에서 말했듯이 법치는 '적법절차'를 뜻하는 게 아니라, 특정 그룹을 편애하거나 차별해선 안 된다는 법 원칙이다. 적과 친구의 원칙은 법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내편은 특혜·특권을 부여하고 네 편에게는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편가르기 정치는 불법 무효임을 선언한 게 법치다. 이에 충실한 법은 차별 특혜 특권을 배제한다. 그런 법은 보편·추상적 성격을 지닌다. 이런 참된 법이야말로 자유로운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자생적 시장질서의 제도적 틀을 구성한다.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게 정치라고 한다면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게 법치이고 시장질서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정치적 갈등, 민주주의 위기, 빈곤, 실업, 양극화 등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야만적인 정치경제적 편가르기 정치다. 자유와 번영을 누리면서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길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문명화된 법치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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