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작가 유시민의 계절을 기다리며 / 이주현

이주현 2021. 1. 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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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유시민의 알릴레오’ 갈무리

이주현 ㅣ 정치부장 

얼마 전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의 에세이집을 읽다가 조금 놀랐다.

2019년 1월 발간된 <오늘도 나에게 리스펙트>. 혼밥 먹기, 소중히 여기는 이별 노래, 남자들끼리 나눈 농담 등 소소한 일상과 음악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뜻밖에 ‘유시민’이라는 꼭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시민의 팬이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피아식별과 이분법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유시민의 글과 책을 통해 내가 동경했던 것은 공/사와 주관/객관과 개인/구조를 구분/구별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것은 나에게 삶의 과제로 남아 있다”는 말을 이어가다가 “작가 유시민을 볼 수 있어 좋은 계절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스무살 무렵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열심히 읽으며 역시 유시민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했던 나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정치활동에 박수만 칠 순 없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 세력을 규합해 만든 국민참여당, 그리고 뿌리와 가치가 다른 통합진보당과의 합당과 결별, 그리고 2013년 “나는 졌다”며 정치판을 떠나기까지. 그 배경엔 주관/객관, 개인/구조의 혼동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공교롭게도, 김봉현의 책이 막 인쇄에 들어가던 즈음, 유시민은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함을 걸고 시사 유튜브 ‘알릴레오’ 첫 방송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깊은 인연과 작가·방송인으로서의 대중적 인기가 유시민 팬덤을 형성했고, 친문재인 지지자들의 결집력이 더해져 알릴레오는 삽시간에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그해 가을 조국 사태가 터졌다. 유시민 자신도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의혹을 덮기 위한 목적으로 최성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의혹에 얽혔다. 그는 진영을 대표하는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조국 일가를 두둔하고 변호하는 데 앞장섰다. 김어준·주진우가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과거’로 발이 묶였을 때 그는 검찰과의 전쟁 최일선에 섰다. 2019년 12월엔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4·15 총선 닷새 전 ‘비례의석 합쳐 범진보가 180석을 차지한다’고 말해 야권에선 ‘오만’, 여권에선 ‘입방정’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예측은 적중했지만 유시민은 ‘내 말이 아니었으면 200석이 됐을 것’이라며 정치비평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조국 반대 진영으로부터 1년 내 기한이 정해진 검찰의 계좌조회 통보 여부를 공개하라는 압력이 계속됐다. 그리고 지난 22일 유시민은 검찰의 노무현재단 계좌 추적은 사실이 아니었다며 검찰과 노무현재단 후원회원들, 그리고 “의혹을 접한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한껏 자세를 낮췄다.

그의 사과를 둘러싼 해석은 분분하다. 먼저 정치적 결벽증이 있는 유시민이 자기완결성을 갖추기 위해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시각이 있다. 향후 검찰의 수사를 염두에 두고 선제적으로 사과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추미애가 윤석열과의 승부에서 밀린 뒤 청와대가 취한 ‘휴전 모드’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다. 직업 정치인이 아닌 ‘비평가’로서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의 힘을 경계하는 이들은 대선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이라고도 본다.

조국 반대 진영의 대표 그룹인 <조국 흑서> 공동 저자들의 반응도 각각이다. 서민은 문재인 정권의 첫 사과라며 “그래도 고맙다”고 했다. 유시민을 집요하게 추궁했던 김경율은 “사람을 무는 개가 물에 빠졌을 때, 그 개를 구해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두들겨 패야 한다”는 루쉰의 말을 인용한 조국의 과거 트위터 글을 재인용했다.

나는 유시민의 사과가 이 지긋지긋한 진영 정치에 마침표를 찍을 분기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려면 상대 진영은 “과도한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는 유시민의 고백을 진지하게 평가해야 한다. 검찰의 향후 행보도 주목해 봐야 한다. 또다른 보복을 불러와선 안 된다.

꽃샘추위가 남아 있겠지만 곧 봄이 올 거다. 작가 유시민을 볼 수 있어 좋은 계절이면 좋겠다.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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