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속풀이]유시민의 사과, '해석'이 분분한 이유

장은지 기자 2021. 1. 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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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020년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선언 16주년 기념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5.7/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 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습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습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2일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의 한 대목이다.

지난 2019년 12월 24일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사찰했다는 주장을 한지 1년여만에 유 이사장은 '알고보니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과했다.

정치인의 사과가 비일비재한 여의도지만,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유 이사장의 사과문은 며칠째 파장이 상당하다. '악마화', '과도한 적대감' 등 이례적인 사과문의 '표현'도 회자됐다.

유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으로, 여권 차기 대권주자로 끊임없이 언급되는 '잠룡'이다.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스타'이기도 하다. 정치적 중량감에 대중적 인지도를 더하면 유 이사장의 발언은 영향력이 크다. 유 이사장이 '윤석열 저격수'로 참전한 것은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부터였다. 이후 주로 유튜브 방송을 통해 윤석열 사단에 대해 거칠게 각을 세웠다. 유 이사장은 조국 사태로 코너에 몰린 여당을 훌륭하게 측면 지원하며 당 지지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이후 추미애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시작된 여권과 검찰간 갈등은 그야말로 '분노의 레이스'였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검찰의 악마화'를 추동한 것일까. 유 이사장이 누구에게 어떠한 경로로 '계좌 사찰 제보'를 받고 의혹을 제기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 이사장 본인의 표현대로 "적대감에 사로잡혀" 판단이 흐려진 것은 맞는 듯 하다. 영국의 대표적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저서 '런던통신'에서 "증오와 지혜는 헷갈리기 쉽다"고 썼다. 그는 "혐오라는 탐조등으로 밝힌 풍경에서 그런 부분만 주목하니,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어둠 속에 숨겨져 있다"고 증오 정치를 경계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020년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0.22/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한편 사과문 내용과는 별도로, 의도를 놓고 여의도는 갑론을박 중이다. 꼿꼿한 유 이사장이 고개를 숙이자 야권에선 유 이사장의 대권 행보 사전포석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대선 출마를 위해 문제될 소지들을 털고 가자는 '복선'이란 주장에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세이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당 핵심인 친문(친문재인)계와 아직 정서적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제3의 후보론에 힘이 실리는 여권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 친문계 한 의원은 통화에서 "유 이사장의 의지와는 별개로 우리 당 지지자들은 유 이사장을 유력 대권 후보로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검찰에 고발 건이 있고 가만히 있기엔 찜찜하니 솔직하게 사과하고 해결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다만 또다른 '친문'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시민 대권 도전설'에 대해 "전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 의원은 "유 이사장에 대선 출마를 해달라고 하는 대중적인 요구들이 분명히 있지만, 본인은 대선 출마와는 관련이 없다고 수차례 밝히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8월 이 건으로 고발당하며 법적 분쟁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추측도 있다. 지난해 8월 한 시민단체는 유 이사장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의혹 당사자로 지목됐던 한동훈 검사장은 유 이사장 사과 이후 법정대응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 검사장이 "늦게나마 사과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입장문을 내면서, 유 이사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도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본인이 고소당한 사건이 있어서 한동훈 쪽에서도 법적 조치 얘기가 나오고 있고, 조만간 수사를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며 "그에 따라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의 사과를 놓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그가 주장해 논란을 빚은 다른 많은 언급 중 유독 계좌추적 한 건에 대해서만 사과한 데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김기현 의원은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씩 실수할 수 있는데 (유 이사장은) 한 번 실수한 게 아니다"라며 "정경심 교수가 밤에 몰래 자기 연구실에 있던 컴퓨터를 들고 나간 게 CCTV에 들켰는데 '검찰이 조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증거 보존하기 위해 들고 나왔다'는 해괴망측한 얘기를 했는데 그건 한 번도 사과를 안 했다"고 지적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날 매일신문 기고에서 "다른 것과 달리 이 거짓말이 법적 처벌이 예상될 정도로 수위가 높았다는 점"이라며 "그가 사과를 한 것은 '용기'의 발로라기보다는 '겁'의 산물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사과문은 그 나름 치밀한 법적 검토를 거쳐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자주 정치·사회적 논란을 부르는 유 이사장의 발언이 이번 사과문에서도 다시 한번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모습이다.

seei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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