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시간 밖에 못 잤지만.." 특수교육 교사가 겪은 비대면 1년

한겨레 2021. 1. 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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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 교사가 겪은 비대면수업 1년
컴퓨터 앞에 앉히기도 쉽지 않은데
집중력·학습능력 서로 다른 학생들
반응 체크, 상호작용 힘드니
고생만큼 효과 있었을까 자문
이선민 교사(서울 한남초)가 지난 21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지난해 코로나19로 힘들었던 특수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수업 영상을 만든 처음 6개월 동안은 하루 4~5시간 자면서 만들었어요. 휴일에도 만드는 날이 많았고요.”

20여년 동안 특수교육을 해온 이선민 교사(서울 한남초)에게 지난해는 그야말로 ‘극한체험’의 시간이었다. 대면수업에서도 집중이 힘들고 학습능력이 서로 다른 학생들을 상대로 원격수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교사가 맡은 학생은 5명. 2학년이 3명, 5·6학년이 1명씩이다. 지적 장애나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다.

“전에 제가 맡은 학생 중에 2~3초도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저를 일단 쳐다보게 하려고 한 시간 수업 동안 최소 100번 이상 그 학생의 이름을 불러야 했어요. ‘○○아, 선생님 봐야지. ○○아, 선생님 봐’ 하면 잠깐 저를 쳐다보지만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기 일쑤였죠.”

코로나19가 휩쓸면서 개학도 하지 못한 채 한달여가 흐른 지난해 4월 초부터 학습자료를 보내고 원격수업을 준비했다. 학습자료와 동화책, 만들기 자료 등을 꾸러미로 만들어 택배로 보내고, 밴드나 카톡, 전화로 학부모와 학생을 상대로 학습 상황을 확인하고 피드백했다. 저학년과 고학년용을 따로 제공하면서 충분한 양의 학습 분량을 만들어 보냈다.

“그런데 보상용 게임이나 영상을 보려고 하루이틀 만에 답만 적어서 다 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의도와는 다르게 학습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다시 꾸러미를 만들어 보내면서 학습자료를 날짜별 페이지를 넣어 구분하고, 활동물을 미리 다 해버리지 않도록 키트화해 해당 날짜를 스티커로 붙였다. 이렇게 2∼3주 분량의 꾸러미를 보낸 게 지난해 모두 19차례였다.

콩나물 키우기 활동을 포함한 학습자료 꾸러미. 이선민 교사 제공

4월 중순께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영상수업을 먼저 준비하고 이후 화상수업도 준비했다.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도 생전 처음이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심심할까봐 동화책 읽어주는 영상자료를 만들었어요. 대면수업도 쉽지 않은 아이들을 원격수업에 어떻게 적응시키나,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할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비대면수업에서 가장 힘든 게 상호작용이에요. 반응을 볼 수 없으니까요. 또 집중이 어려운 학생에게 제시할 영상을 찾아내고 만드는 데 훨씬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10분 분량의 영상수업 자료를 만드는 데 처음에는 10시간 넘게 걸리더라고요. 나중에 100편 이상 만들면서 익숙해져도 최소 4~5시간은 작업해야 했고요.”

콩나물 키우기 영상수업 화면. 이선민 교사 제공

일단 가져다 쓸 수 있는 영상자료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일반 학생들의 경우 편집만 하면 가져다 쓸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있지만, 장애 학생들을 위한 자료는 찾기가 힘들었다. 특수교사 누리집,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제공하는 교과서 관련 자료들, 유튜브에서 학생들이 흥미롭게 볼 만한 자료 등 여기저기를 뒤져 거의 새로 만들어야 했다. 서울시교육청 누리집에서 특수교육용 영상자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 11월부터다.

게다가 어리고 집중력이 좋지 않은 학생을 위해 장면을 제시한 뒤 집중을 위한 밑줄이나 별표 등 여러 장치를 넣다보니 편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예를 들어, 옛날 다이얼식 전화기 그림에 숫자를 써 넣는 내용에서는 “선생님과 함께 읽어봅시다, 일, 이, 삼, … 구, 영”이라고 말하면서 타이밍에 맞춰 색깔이 다른 숫자가 시간 길이별로 제시되도록 했는데, 천천히 말해도 15~20초밖에 안 되는 장면이었지만 정말 품이 많이 들어갔다.

학생이 제출한 콩나물 키우기 과제물. 이선민 교사 제공

줌으로 실시한 화상수업도 마찬가지였다. 30분 수업을 위해 영상과 피피티(PPT) 자료 등을 아이들한테 맞게 작업하는 데만 3시간씩 걸렸다. 장애가 심하고 집중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언제부터인가, 교직 생활에 계속 지치기 시작하면서 좌우명을 ‘최선을 다하지 말자’로 바꿨어요. 차선과 차악 사이에서 끌리는 걸 택하기로 했지만,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최대치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더군요.”

이처럼 힘든데도 매일 영상수업이나 화상수업을 준비한 것은 학생들의 규칙적인 생활과 학습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한 학생의 경우 집에서 방치되다 보니 매일 밤늦게까지 게임에 빠져 늦잠을 자곤 했는데, 매일 학생이나 부모에게 전화를 해 깨워가면서 꾸준히 영상수업을 하다보니 좀 지나서는 수업에 꼬박꼬박 참석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특히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대면수업의 한계는 분명했다.

“여러 학습 수준의 학생들이 함께 하는 수업의 경우, 같은 학습자료를 보지만 학생마다 학습 목표는 다르다”고 이 교사는 말했다. 어떤 학생은 전체 줄거리를 요약해서 알맞은 태도로 발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어떤 학생은 장면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어떤 학생은 그림을 보며 등장인물이나 중요한 물건의 이름을 말하거나 따라하는 게 목표가 된다는 것이다.

“대면수업을 하면 아이의 반응을 보고 반복하거나 하는 시간이 있는데, 비대면수업에서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냥 일방적으로 전달식 강의를 하다보니 2~3년 수업할 내용을 한 해에 다 한 것 같아요. 저는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을 열심히 전달했지만, 아이들이 익혔느냐는 또 다른 숙제인 듯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상황이 좋아져서 가능한 한 주 2~3일은 등교수업이 함께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게 이 교사의 새해 소망이다.

글·사진 김인현 객원기자 inhyeon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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