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정치 볼모'가 된 주가

한영일 기자 2021. 1. 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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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을 '자본시장의 꽃'이라 한다.

정치인들이야 언제나 그렇듯 한때 표를 얻겠다고 허튼소리를 내뱉는다 치더라도 문제는 금융위를 비롯한 증권 유관 기관과 협회 등 시장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책임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갈팡질팡하거나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동학 개미군단이 등장한 후 그동안 경제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주식시장 이슈가 '정치의 영역'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것이 '주가 3,000시대'를 맞아 정치권이 자본시장에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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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증권부장
공매도 재개 앞두고 정치 입김 세져
선거 겨냥 '개미=표' 정략적 움직임
전세계 공매도금지국은 단 2곳뿐
정부·업계 갈팡질팡에 침묵만 고수
'주가 3,000시대' 시장 논리는 침몰
[서울경제] 주식시장을 ‘자본시장의 꽃’이라 한다. 기업은 물론 사회의 모든 정보가 한곳에 모여 ‘주가’로 귀결된다. 기업과 주주, 그리고 투자자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돼 울고 웃는다. 이곳에는 새로운 산업이 보여 주는 우리의 미래뿐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의 욕망도 도사리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시장 논리’라는 하나의 대원칙 아래 작동한다.

하지만 최근 공매도 재개 여부를 놓고 불거지는 논란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난데없이 정치권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급증한 수백만 명의 개인 투자자, 즉 ‘동학 개미’의 표를 노린 정치인들이 ‘훈수 두기’ 차원을 넘어 시장을 좌지우지하려는 행태가 노골화되고 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 미리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기업의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올랐을 때 공매도가 늘어 향후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증시가 단기 급락하자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공매도를 6개월 금지했다가 한 차례 더 연장했다. 그리고 오는 3월 16일부터는 재개하기로 이미 발표했다. 하지만 4월 7일에 치러질 재보궐선거에서 ‘개미 표’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 “공매도를 재개하면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며 금지 조치를 연장해야 한다고 최근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단 2곳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한정하면 한국뿐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공매도가 외국인과 기관의 거래가 99%를 차지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래서 금융위도 이에 대한 제도 개선에 이미 나선 상황이고 불법 공매도 처벌을 강화하는 정책도 내놓았다.

공매도 제도는 정상적인 가격 발견이라는 순기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공매도를 증권시장의 ‘독’이라고만 주장하는 정치권의 주장은 그저 시장 논리는 무시한 채 개미의 공포심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속셈이나 다름없다. 주가가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른 인질로 잡힌 꼴이다.

정치인들이야 언제나 그렇듯 한때 표를 얻겠다고 허튼소리를 내뱉는다 치더라도 문제는 금융위를 비롯한 증권 유관 기관과 협회 등 시장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책임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갈팡질팡하거나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무책임하다. 이들의 경우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상당수가 “공매도는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도 나서 정치권을 향해 ‘NO’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치 논리가 시장을 뒤흔든다면 ‘안 된다’고 말할 법도 하지만 그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시장은 과연 누가 지키는가. 시장이 정치에 휘둘릴 때 업계가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는 것은 이에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장에 대한 배신이자 공범이다. 앞으로 정치권이 자본시장을 규제하는 법이라도 만들라치면 그때 가서 ‘시장의 자율을 침해하면 안 된다’고 외칠 수 있겠는가.

동학 개미군단이 등장한 후 그동안 경제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주식시장 이슈가 ‘정치의 영역’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때마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정치권의 눈치만 살필 것인가.

이번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주가를 하락시킬 위험이 있다며 공매도 재개 반대론을 펼치는 정치권이 내년 대선 즈음에는 아예 ‘주가 하락 금지법’을 만들자고 하지 않을까 싶다. 시장의 문제는 시장의 잣대와 논리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주가 3,000시대’를 맞아 정치권이 자본시장에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다. han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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