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 정의당..재창당 수준 쇄신론 힘 받나

김원철 2021. 1. 2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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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대표 성추행 파문]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대표직을 사퇴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당대표실에서 부대표단이 모여 비공개 대표단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대표가 성추행이란 충격적 비위로 직을 박탈당하면서 정의당이 창당 9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4월 보궐선거는커녕 당의 존립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당내에선 지도부 총사퇴 뒤 재창당 수준의 개혁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국민께 치명적 상처…” 말 못 이은 부대표

25일 오전 10시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가 침통한 표정으로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 앞에 선 배 부대표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입을 떼면서부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비위 사실을 공개했다. 배 부대표는 “성평등 실현을 위해 앞장서 왔던 정의당 대표에 의해 자행된 성추행 사건이다. 정의당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당원 여러분, 국민 여러분께 치명적 상처가 됐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손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른 아침 긴급 소집된 대표단 회의 직전까지도 배 부대표와 김 대표, 장혜영 의원 외에는 당내 누구도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지도부는 회의에 와서야 성추행 사건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해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당은 오전 시도당연석회의, 지역위원장 연석회의를 통해 사안을 공유했다. 오후 열릴 예정이던 대표단 회의는 취소됐다. 이날 정의당 지도부는 대변인단 일부를 제외하고는 언론과 접촉을 피했다. 김 전 대표도 종일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수도권의 한 지역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착잡한 마음이다. 많은 당원이 실망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어떻게 당을 추슬러야 할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고 했다. 한 정의당원은 “당분간은 많은 것이 힘들 것 같다. 우선 이번 일에 집중해서 젠더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는 시간을 가져야할 것 같다”고 했다.

“보선 후보 내지 말자”…커지는 무공천론

직위해제된 김종철 전 대표는 정의당이 4월 총선 패배 뒤 내세운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포스트 노(회찬)·심(상정)’ 체제를 이끌 리더로 주목받았다. 정의당이 이번 사건으로 입은 내상은 상상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난 총선 실패로 큰 위기에 빠진 정의당이 세대교체로 위기를 타파해보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세대교체의 상징적인 인물이 가해자가 되었다”라며 “어려운 상황에서 조금씩이나마 해보려던 상황이었는데 이런 노력이 와르르 무너졌다. 대중의 신뢰를 다시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근절이 김종철 지도부의 핵심 의제였던 만큼 후폭풍을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부터 후보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의 성범죄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 공천을 하는 것을 줄곧 비판해왔다. 수도권 한 지역위원장은 “4월 선거 출마 명분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과연 선거를 치를 수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정의당원은 “‘당 대표가 성추행한 당이 표 달라고 나왔느냐’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며 “‘스스로를 심판하겠다’며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정의당은 지난 22일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후보 등록을 마감했다. 서울시장 후보에는 권수정 서울시 의원이, 부산시장 후보는 김영진 부산시당 위원장이 신청했다. 이들을 상대로 찬반 투표를 벌여 최종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지도부 총사퇴→비대위 구성’ 수습책 거론

차기 지도부 구성 방안을 두고도 여러 논의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 관계자는 “차기 대표는 누가 맡아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심상정 전 대표가 다시 맡기도 어렵고, 장혜영 의원은 피해자라서 바로 나서기가 어려울 것 같고, 답이 없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직무대행 관할로 대표 보궐선거를 치르거나, 현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일각에선 보궐선거로 새 지도부를 뽑는 정도로는 수습이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다.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통해 당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철 정환봉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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