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국채 직매입으로 손실보상?.. "일본식 채무폭증 유발하나" 비판

조은임 기자 2021. 1. 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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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兆 손실보전법 논란]
與 민병덕 발의안 논란 불지펴… "한은 국채매입으로 月 25조 지원"
국고채 10년물 금리 1.8% 육박… 1년 2개월來 최고치까지 올라
시장선 일제히 비판… "독립성 침해 이어 인플레·환율까지 불안"

자영업자·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위한 재원 마련 주체로 한국은행이 지목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매월 24조7000억원, 넉 달 기준 약 100조원이 소요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은의 국채인수(직매입)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사실상 '양적완화'를 정치권이 강제하고 있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손실보상제가 여당의 해당 발의안 대로 진행될 경우 문제는 중앙은행선에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한은의 국채 매입으로 확보된 막대한 자금을 시중에 풀게 될 경우 이는 즉각적인 통화량 증대로 이어지게 된다. 인플레이션 가능성과 함께 통화가치 절하로 인한 환율 상승까지 내다볼 수 있다. 당장 국고채 금리는 이같은 우려를 반영해 1년 2개월여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한은은 정부 채무를 떠안는 '부채의 화폐화'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5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이날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1.780%로 전거래일대비 0.022%포인트(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11월 18일(1.781%) 이후 약 1년 2개월 만의 최고치다. 국고채 3년물 금리도 0.013%p 오른 1.006%에 장을 마쳤다. 3년물 금리가 연 1%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해 4월 29일(1.006%)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채권시장은 여당을 중심으로 자영업자 손실보상제 논의가 진행되면서 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기재부에 손실보상 제도화 방안 검토를 공식적으로 지시한 이후 하루 뒤인 22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1.758%로 하루 전에 비해 0.052%p나 급등했다. 국채 금리는 은행들의 대출 금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채 금리 상승은 시중 금리 상승 요인이 된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손실보상제 시행을 가정했을 때 발행되는 국채물량을 한은이 다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우려 있다"며 "지난해에도 한은이 11조원 어치의 국채를 매입한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했다.

특히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를 두고서는 논란이 더욱 가중되는 분위기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법안이 불쏘시개가 됐다. 민 의원의 법안은 집합금지 업종의 경우 손실매출액의 70%이내, 그외는 50~60% 내의 금액을 보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소요되는 자금은 매월 최대 24조6000억원, 넉 달 기준으로 100조에 달한다.

해당 법안은 재원마련안으로 한은의 국채매입을 지목했다. "국가는 손실보상금 및 위로금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발행한 국채는 한은이 매입하며, 매입 금액은 정부 이관 후 소상공인 및 국민에게 지급한다"고 하면서다. 한은이 유통시장이 아닌 발행시장에서 직매입하는 방안을 담은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해 10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은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은 직매입 방식으로 자영업자 지원에 올해 예산(558조원)의 20% 수준에 달하는 돈을 풀겠다는 것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무제한적으로 중앙은행이 인수하게끔하는 일본식 양적완화를 강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중앙은행의 국채 직매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의 한 방법으로 사용했지만, 최후의 재원조달 방안으로 여겨진다. 2000년대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이 처음 사용한 정부 재정 조달 수단이다. 일본은행(BOJ)은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돈을 풀고 있으며, 지난해 4월에는 정부 국채 매입 목표제를 폐지했다. 정부가 요구하는 만큼 국채 매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이 GDP(국내총생산) 대비 230% 이상 올라간 배경에 중앙은행의 국채 인수가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 처럼 기축통화국도 아닌 금융환경에서 중앙은행이 정부 재정정책의 뒷수습을 하게 만든 일본식 재정정책을 우리나라가 무분별하게 따르는 것은 곤란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나 손실보상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는 방식으로 논의가 전개되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이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독립성 침해’ 논란까지 이어질 우려가 크다.

정부가 한은의 국채매입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한꺼번에 시장에 공급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당장 정부가 지방정부나 가계,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면 그때부터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협의통화(M1)로 잡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전망되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더욱 가중될 수 있는데다가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해 원화 가치 급락 등 환율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손실보상제에 소요되는 액수가 과도한데다 중앙은행 차원의 문제를 벗어나 보더라도 부작용이 너무 심할 것"이라며 "사실상 한은이 화폐를 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함께 화폐 절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한은은 손실보상제 재원과 관련해 공식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이주열 총재는 과거 정부의 부채를 중앙은행이 감당하는 '부채의 화폐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명확히 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 출석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국채를 매입할 계획"이라면서도 "정부 지출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부채의 화폐화’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복수의 한은 관계자들은 "총재가 기존에 밝혔던 입장과는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며 "이제 법안이 발의된 것이니 만큼 앞으로 진행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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