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배터리, 촉매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 서비스 시대

이현경 기자 2021. 1. 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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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유일 시뮬레이션 플랫폼 스타트업 '버추얼랩'
버추얼랩(Virtual Lab)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스타트업이다. 2016년 창업 당시 3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2명으로 늘었다. 가운데가 이민호 버추얼랩 대표다. 버추얼랩 제공

이민호 버추얼랩(Virtual Lab) 대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게 취미였다. 2011년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뒤 연구실 선후배들이 소재 연구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짜려고 리눅스를 배우는 데만 반년씩 시간을 쓰는 게 안타까웠다. 소프트웨어를 사자니 연간 사용료만 3000만 원에 달했다. 이 대표는 주말마다 짬을 내 원자 사이 거리와 배치 등에 따라 소재의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간단히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다. 동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 길로 창업을 결심했다. 

이달 말이면 창업 만 5년이 되는 버추얼랩 이 대표를 19일 만났다. 버추얼랩은 현재 회사 이름처럼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가상으로 실험할 수 있는 가상 실험실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머티리얼 스퀘어(Material Squre)’는 버추얼랩이 직접 개발했다.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은 세계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엑사바이트' 정도다. 한국에선 버추얼랩이 유일하다.

이 대표는 “신기능 합금, 배터리 소재, 촉매 등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려면 원자와 분자 수준에서 연구해야 한다”며 “머티리얼 스퀘어는 원자 수준인 옹스트롬(Å·1옹스트롬은 10억 분의 1m) 단위에서 양자역학 계산, 열역학 계산 등을 통해 결과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클라우드에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불러오는 방식이어서 사용한 만큼 돈을 내면 된다. 클라우드 서버 사용료는 시간당 25센트(약 300원)다. 프로그램 비용은 사실상 무료다. 열역학 결과 계산에 사용하는 데이터베이스 이용료도 가장 비싼 게 건당 2달러(약 2200원)다. 

이 대표는 “철강에서는 탄소, 규소, 망간, 인, 황 등 5개 원소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성능이 결정된다”며 “클라우드를 이용해 가격 부담을 낮춘 만큼 중소기업의 소재 연구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버추얼랩은 미국 부품회사인 ATI에 머티리얼 스퀘어를 수출하기도 했다. ATI는 항공우주산업용 니켈, 코발트 기반의 초합금, 티타늄 기반 합금 등 특수강 분야의 세계적 기업으로 한 해 매출만 4조 원 규모다. 이 대표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금속학회에 버추얼랩 전시 부스를 열었는데, 부스를 세 번이나 찾을 만큼 관심을 보였다”며 “지난해 머티리얼 스퀘어를 시범적으로 사용한 뒤 결과에 상당히 만족했고 계약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버추얼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되자 이를 기회로 삼아 교육 프로그램도 구축했다. 웹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전문가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동시에 시뮬레이션을 직접 할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국내 소재 관련 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 13명이 참여한 20분짜리 강연 콘텐츠 173개가 올라와 있다. 최근에는 전남대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러브콜을 받았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윤가영 버추얼랩 이사는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는 과정이 화학적으로는 원자 사이의 결합이 끊어지는 것"이라며 "이를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버추얼랩은 2019년 여름 경기 성남 낙생고 과학교사의 요청으로 2학년생 10여 명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머티리얼 스퀘어 사용자는 4000여 명. 전세계 소재 연구자의 1%에 해당한다. 이 대표는 “향후 전 세계 소재 연구자의 20%를 머티리얼 스퀘어 사용자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이산화탄소를 일산화탄소로 바꾸는 등 친환경 기술도 원자 수준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버추얼랩 창업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에서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2년간 근무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는 사무실도 KIST 내 창업보육센터에 있었다. 이 대표는 “직접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창업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며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있었던 덕분에 창업에 필요한 여러 교육을 받은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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