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면역'은 없었다..브라질 아마존의 비극

정유진 기자 입력 2021. 1. 25. 15:10 수정 2021. 1. 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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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7명의 환자가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기까지 불과 60분이 걸렸다. 의료진은 그저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켜 보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병원의 의료용 산소는 이미 바닥이 났다. “다시 돌아가서 환자들을 위해 싸워야 하는데, 너무 무력한 기분입니다.” 프란시스날바 멘데스 보건소장이 흐느끼며 말했다.

24일(현지시간) 가디언이 전한 이 비극은 브라질 북서쪽 아마조나스주의 주도인 마나우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3번째로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은 나라이지만, 그 중에서도 브라질 내에서 가장 가난한 아마존 지역의 상황은 이미 재앙적 수준이다. 지난해 말 다시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 14일부터는 의료용 산소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브라질 마나우스 지역의 한 산소 충전소에 산소를 구하러 온 코로나19 환자의 가족들이 몰려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의료용 산소 바닥…날마다 새로운 무덤

마나우스 지역의 감염병 전문의인 마르쿠스 라세르다는 “밀려오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며 “민간 병원들은 산소가 바닥날까봐 아예 환자를 받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병원에 입원하지 못해 자가 치료를 하고 있는 이곳 가정들에게 산소통은 필수품이 됐다. 정글과 인접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바스콘셀로스 데 제수스의 10살 난 아들은 방 안의 침대에 누워 산소통에 의지한 채 겨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산소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채워넣기 위해 온 가족이 항상 산소를 구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 바스콘셀로스 같은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산소 충전소에는 언제나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심지어 병원에서조차 입원한 환자의 가족에게 “산소 충전소에 가서 산소를 구해오라”고 요구할 정도다.

마나우스 지역의 소식이 알려지자 브라질의 인플루언서와 셀러브리티들이 개인 전용기를 띄워 아마존 지역에 산소를 보내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까지 산소통이 가득 실린 트럭을 마나우스 지역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 붕괴 상태에 놓인 마나우스를 구하기엔 역부족이다.

브라질 정부는 산소 부족 사태가 벌어진 이후 사망자가 얼마나 추가로 발생했는지 정확히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현지의 한 의사는 지난 22일 알자지라에 “14일 이후 최소 100명 이상은 산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나우스에는 하루가 머다하고 새로운 무덤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인 ‘AM1’은 지난 16일 하루동안 마나우스시에 등록된 사망신고가 약 200건에 달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였다고 보도했다.

지난 6일 브라질 마나우스 지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 공동묘지에 묻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집단 면역’은 없었다

브라질 마나우스는 지난해 4월 1차 대유행 당시에도 브라질 내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곳이다. 날마다 넘쳐나는 시신들을 감당하지 못한 정부가 땅을 파서 대규모 공동묘지를 조성했을 정도였다. 워낙 감염자가 많이 나오다보니 ‘마나우스는 이미 집단 면역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말까지 떠돌았다.

지난해 9월, 이 같은 루머를 사실로 확인시켜 준 초기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브라질 아마존 지역의 코로나19 집단면역’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연구진은 마나우스 인구 200만명 중 76%가 항체를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대했던 ‘집단 면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나우스는 현재 1차 대유행 때보다 더욱 고통스런 상황에 놓여있다. 논문의 저자 중 한명인 상파울루 대학의 이스터 사비노 교수는 최근 “2차 유행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집단 면역’이란 말을 초기 논문 제목에 넣은 것을 후회한다고 이코노미스트지에 말했다.

마나우스에 다시 감염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온다. 먼저 76%라는 항체 보유자의 숫자 자체가 실제보다 과다 추정됐을 가능성이다. 브라질 펠로타 국립대학 교수인 페드로 할랄은 “지난 6월 무작위로 실시한 샘플 조사 결과 마나우스의 항체 보유자는 15%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집단 면역’의 기대에 부푼 사람들은 다시금 아마존의 해변으로 몰려나왔고, 진단검사 건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최근 아마존 지역에서 발견된 변이 바이러스가 마나우스 지역에 다시 코로나19를 확산시켰을 가능성도 크다. 지난 6일 일본으로 입국하던 브라질 여행객 4명에게서 처음 확인된 이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강한데다, 항체 회피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나우스에서는 지난 4월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사람이 이번에 다시 변이 바이러스에 재감염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 수집된 마나우스 지역의 감염자 혈액 샘플 조사 결과 42% 가량이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마나우스의 상황은 당분간 계속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600만 도즈(1회 접종량)의 백신을 확보했지만, 이 중 아마존 지역에 할당된 것은 7만여 도즈 뿐이다. 브라질에서는 ‘남미의 트럼프’라고 불려온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향해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하라는 촉구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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