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을 주워담기가 이렇게 어렵다

손덕호 기자 2021. 1. 2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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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일정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문재인 대통령의 이 말 때문에 일주일 전 정치권은 난리가 났다.

두 시간 동안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다른 발언은 다 묻히고, 오직 이 말만 국민들의 기억에 남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17년 12월 위안부 합의에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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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부모의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일정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문재인 대통령의 이 말 때문에 일주일 전 정치권은 난리가 났다. 두 시간 동안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다른 발언은 다 묻히고, 오직 이 말만 국민들의 기억에 남았다. 입양한 딸을 키우는 김미애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입양 아동이 시장에서 파는 인형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에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대통령의 말씀은 '사전위탁보호' 제도 등을 보완하자는 취지"라며 진화에 나섰다. 아이를 위해 입양 전 5~6개월간 사전 위탁을 통해 아이와 예비 부모 친밀감 형성과 새로운 가족 관계 준비를 수시로 지원하고 점검하도록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법원 판결에 대해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한 발언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지난해까지 한 말과 궤를 달리한다.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삼권분립'이 근거였다. 동일한 내용의 판결이 문 대통령을 "솔직히 곤혹"스럽게 한 결과로 돌아왔다.

또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국 정부 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말도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17년 12월 위안부 합의에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고 했다. 2018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거출해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이 "위안부 할머니들과 국민들의 반대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도 했다. 화해·치유재단은 그로부터 두 달 뒤 해산됐고, 이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요즘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파기된 위안부 합의를 되살리는 데 골몰하고 있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으려 하고 있다.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는 일본 도착 첫마디로 "위안부 합의가 파기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화해·치유재단이 해산한 것은 이사장이나 이사들이 사퇴해서 벌어진 일이고, 정부의 압력 때문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새 주일대사는 일본 국왕을 "천황 폐하"라고 불렀다. 한국 정부의 일본 국왕에 대한 공식 호칭은 '천황'이지만, 여기에 '폐하'라는 경칭을 덧붙였다. 대통령의 말을 주워담으려 부단히도 애쓴다 싶다. 이럴 것이었으면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있던 분이 '죽창가'는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도 문 대통령의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은 2018년 4월 청와대 보좌관이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고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게시한 글을 보고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물었다. 이를 보고 받은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은 '즉시 중단'을 지시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이 드러났고, 주워담지 못했다. 결국 검찰 수사는 청와대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집권 5년차에 일이 꼬였다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말을 주워담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앞으로는 말을 주워담을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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