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3년의 시간을 벌었다

김은지 기자 2021. 1. 25. 11: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개혁 행보가 두드러지지만, 국정원을 감시하고 비판했던 이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쟁점이었던 대공수사권 이관은 당장 시행되지 않는다. 3년 유예됐다. 국정원은 시간을 벌었다.
ⓒ연합뉴스2020년 11월26일 국회 앞에서 열린 국정원 개혁 후퇴,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에서 ‘국정원 감시 네트워크’ 관계자들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즉각 이관을 촉구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지난해 11~12월에만 보도자료 13건을 냈다. 2016년 3월4일부터 2021년 1월13일 현재까지 국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도자료는 모두 30건이다. 이 중 절반가량이 지난 두 달 사이에 발표됐다. 2019년에는 한 건의 보도자료도 없었다는 점과 비교해도, 최근 국정원의 행보는 눈에 띈다.

단순히 개수만 많은 게 아니다. 소위 ‘기사가 되는’ 내용을 시의적절하게 발표했다. “국정원,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 전수조사 TF 구성’.” 유우성씨에 이어 간첩 혐의를 받은 탈북자 홍강철씨가 지난해 12월24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자, 나흘 후 국정원이 내놓은 보도자료(2020년 12월28일)의 제목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정원, ‘세월호 관련 자료’ 전체 목록 사참위 열람 추진” “국정원, ‘사찰성 정보’ 공개 청구 TF 구성해 적극 협력할 것” 같은 제목의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연장되자, 국정원 세월호 관련 자료 목록 64만여 건을 사참위에 공개하겠다는 내용이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등이 펼치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파일’ 공개 운동에도 호응할 예정이다.  

국정원을 감시하고 비판했던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 변호사는 “TF 구성원을 봤냐”라고 외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탈북민 위장 간첩 사건 전수조사 TF’는 국정원 기조실장과 국정원 파견 검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찰성 정보 공개 청구 TF’ 또한 기조실장과 국정원 내부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TF는 환영하지만, 내부 인사로만 구성된 TF 활동은 신뢰받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스스로’ ‘알아서 잘’ 개혁할 수 있는 권력기관은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개혁위)에 관여했던 이의 대답도 회의적이었다. 국정원은 ‘셀프 개혁’을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개혁위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 조치 첫발로 만들어진 한시 기구였다. “개혁위가 만들어질 때도, 서훈 원장은 자기를 위원장으로 하고 위원회를 꾸리려 했다. (국정)원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국정원 적폐를 진단하고 조직 쇄신을 한다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신뢰받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자기들끼리 하려 했다. 청와대가 방향을 틀었고, 외부 인사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국정원이 변한 것 같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2020년 말에 이뤄진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쪽으로 대답이 모였다. 국정원 관련 법 개정은 1961년 이래 18차례나 있었지만, 이번 개정은 국정원 창설 60년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담고 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가 사라지고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된다. 미국 CIA나 영국 MI6처럼, 국정원의 기능에서 수사 및 국내 정보 수집을 배제하고 방첩·대(對)테러 등 안보와 관련된 정보 수집 부문으로 특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댓글 조작·민간인 사찰·간첩 조작 등 논란의 중심에 국정원이 있었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제도 개혁안이다. 지난해 12월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됐다. 입법부의 견제 수단도 추가됐다. 국회 정보위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의 의결이 있으면 국정원은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다만, 대외안보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겠다는 당·정·청의 계획은 한 발짝 물러섰다.

문재인 정부 들어, 권력 기관 중 국정원은 상대적으로 자체 개혁 조치가 잘 이뤄지는 편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정원 수장이었던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하자마자 IO(국내 정보 담당 요원)를 없앴다. 개혁위를 꾸려, 국정원 내 적폐 청산과 조직 쇄신을 위한 TF를 운영했다. 개혁위 조치에 따라 국내 정치 개입 등 불법행위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을 검찰 수사에 넘겼다. 과거에도 국정원은 정권의 뜻에 순응하는 쪽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은 어두운 과거사를 사과하고, 산업 정보 부문을 강화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국정원장 대면 보고를 끊었다.

ⓒ시사IN 자료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북한이탈주민 보호센터의 모습. 국정원이 운영한다.

대공수사권 이관의 현실적 문제들

권력자의 의지에 따른 변화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은 악명 높던 과거로 돌아갔다. 정보기관이 아닌 공작기관 역할을 했다. 끊임없이 국내 정치 개입을 벌였다. 국정원이 자신하던 대공 수사조차 조작한다는 사실이 ‘유우성 사건’으로 드러났다. 정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국정원은 몰랐다. 국정원 개혁을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시간이었다. 그 때문에 국회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하태경 의원도 국내 정보 수집을 법으로 금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쟁점은 대공수사권 이관이었다. 보수 야당은 대공수사권이 없어지면 간첩은 누가 잡느냐며 반대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0년 11월25일 “국정원에서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는 것은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없애는 것이다”라며 대공수사권 이관에 반대했다. 보수 야당의 반발과 남북 분단 현실에, 정부·여당 일각에서도 대공수사권 폐지를 망설였다.

청와대가 강한 의지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은 확고하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금지와 대공수사권 폐지가 한 쌍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대선 후보 시절, 여러 번 밝혔다. 2017년 1월5일 그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간첩 조작 등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국내 정보활동의 빌미가 된 수사 기능을 없애겠다”라고 밝혔다. 수사를 위해 국내 정보 수집을 하고, 정보 수집을 한 다음 수사권을 활용하는 악순환이 국정원 본연의 정보 기능을 못하게 망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공수사권 이관은 당장 시행되지 않는다. 3년 유예됐다. 2023년 12월31일까지는 여전히 국정원이 대공 수사를 한다. 게다가 국정원의 조사권이 신설된다. 현장조사·문서열람·자료요구 등과 같은 조사를 할 수 있다고 국정원법 개정안에 명시되어 있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라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공 수사는 국정원의 오래된 노하우가 있다. 3년씩이나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대공 수사를 경찰 안보국으로 이관한다면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일부 국정원 인력을 경찰로 보내야 할 거고, 그렇게 되면 7급부터 시작하는 국정원과 9급부터 시작하는 경찰 사이의 직급과 보수를 조정하는 등 세부적 이슈들이 발생한다. 과거 통일부 신설 당시 대북 업무를 하던 국정원 직원들이 통일부로 갔을 때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더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국정원 감시 네트워크’는 이번 국정원 개정안을 개혁 후퇴라고 반발했다. 국정원 감시 네트워크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빼앗기지 않을 3년을 벌었고, 그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조사권도 갑자기 추가된 안인데, 어떤 식으로 악용될지 가늠이 안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공 수사와 국내 정보 수집을 모두 하게 되는 경찰에 대한 개혁안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결국 국정원 개혁을 판단하는 데에는 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해진 셈이다. 불가역적 조치가 취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개혁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www.sisain.co.kr) - [ 시사IN 구독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