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해진 경찰의 '한 지붕 두 가족' 시대

김은지 기자 2021. 1. 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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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개혁을 촉구해왔던 이들은 이번 법 개정안을 두고 '경찰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경찰의 권한이 더 강해지는 데 비해, 견제장치는 부족하다는 점에서다. 정보경찰 폐지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21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경찰은 12만명 이상 규모의 조직이다. 규모가 큰 만큼,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한 수직 조직이 전국 방방곡곡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다. 민생과도 가깝다. 수사뿐 아니라 경비, 교통, 생활안전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해서다. 살면서 검사를 만날 일은 드물어도, 경찰관은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만큼 경찰개혁 이슈는 시민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경찰 또한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인 흑역사가 존재한다. 크고 작은 곳곳에 경찰의 힘이 미친다. 경찰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지난해 말 우수수 통과된 권력기관 개혁 법안이 2021년 새해 들어 하나둘씩 가동되기 시작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면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졌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사라질 예정이다. 이 기관의 국내 정보 수집도 법으로 금지됐다(국정원은 3년의 시간을 벌었다 기사 참조). 권한 오남용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검찰·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기능을 하나씩 떼어냈다.

반면 경찰은 권한이 늘어났다.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신설됐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지면서, 국수본이 수사를 총괄하게 된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경찰이 가져간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라는 방향은 문재인 정부의 애초 설계다. 문제는 권력기관 사이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담보하느냐이다. 국가기구의 정보·수사·기소 역할을 기관별로 나눠서 힘의 균형을 꾀한다는 복안이었는데, 경찰의 권한은 더 커졌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를 전담하는 데다 정보·경비 업무까지 맡는다.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다는 문제의식은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을 짤 때부터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공약집의 경찰개혁 부문은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전국 확대’로 시작한다. 현재 경찰청장을 꼭대기로 한 일원화된 경찰 조직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이원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국가경찰은 전국 치안 수요 대응, 자치경찰은 지역밀착 치안 서비스 제공’이라고 쓰여 있다. 미국의 연방경찰과 자치경찰처럼,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눠 경찰의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경찰법과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경찰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뉜다. 6개월간 시범운영을 하고, 오는 7월1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하지만 경찰개혁을 촉구해왔던 이들은 이번 개정안을 두고 ‘경찰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경찰의 권한이 더 강해지는 데 비해, 견제장치는 부족하다는 점에서다. 공룡 경찰이 탄생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경찰 비대화를 견제할 수단인 자치경찰제에 대해서도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개정된 경찰법과 경찰공무원법에 따르면, 국가경찰은 경찰청장이, 자치경찰은 시장·도지사 소속으로 신설되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지휘·감독한다. 시장·도지사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시·도의회 추천 2명, 국가경찰위원회 추천 1명, 시·도교육감 추천 1명, 시·도자치경찰위원회 추천 2명, 시장·도지사 지명 1명으로 구성된다. 자치경찰은 해당 지역의 생활안전·교통·경비·수사를 담당한다.

언뜻 자치의 위용을 갖춘 듯 보이지만, 핵심은 예산과 인사다. 관련 법을 보면, 시·도경찰청의 임용은 경찰청장이 ‘일부’ 권한을 시장·도지사 등에게 ‘위임’할 수 있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에 인사권이 없다는 의미다. 자치경찰의 예산 또한 ‘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어’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시장·도지사가 수립한다. 자치경찰 업무에 경찰청장의 입김이 닿을 여지가 남았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완전한 분리라고 보기 힘들다. 한 지붕 두 가족 모양새를 꾸려놓고 자치경찰 출범이라 주장하는 것은 ‘말잔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IN 이명익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정보경찰의 선거 개입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바 있다.

현실론에 밀리고 밀린 경찰개혁

정부·여당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12월22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관련 질문이 나왔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이번에 이뤄진 경찰개혁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주문했다. 전해철 당시 장관 후보자는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경찰의 비대화를 막기 위한 주요한 방안 중의 하나가 자치경찰제인데, 지금 자치경찰제는 지난 제20대(국회) 때 발의된 것에 비해서 좀 더 충분하지 않다. 물론 그게 비용의 문제나 (경찰 내) 여러 지위 신설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완성된 모습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한다.”

20대 국회 때보다 경찰 이원화 방안이 둔화된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방향 선회는 지난해 7월 말 당·정·청 협의에서 급격히 이뤄졌다. 지난해 11월3일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 논의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도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김 의원은 이번에 통과된 경찰법 등 정부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제자로 나선 양영철 한국지방자치경찰정책연구원장은 이러한 변화 요인을 재정 부담으로 꼽았다. 전 장관의 ‘비용’ 이야기와 통하는 말이다.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환경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경기침체로 재정수입은 한계에 이르고 있는데, 자치경찰 이원화 모델 실시로 발생하는 3조5000억원에 대한 부담이 매우 크다.”

‘현실론’에 밀리고 밀려 경찰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원안에서 계속 후퇴했다. 경찰개혁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경찰관 4만3000명을 자치경찰로 전환해야 하는데, 만약 손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그만큼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현실적인 걱정이 제기됐다. 게다가 국수본 등이 생기면서 경찰의 상위직급이 늘어나는데, 다른 공무원 조직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라고 말했다. ‘현실론’을 견뎌낼 문재인 정부의 경찰개혁 의지가 부족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국가경찰의 견제 수단도 빈약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청장을 제어할 기구로 현행 ‘경찰위원회’를 ‘국가경찰위원회’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이 또한 경찰청장 산하다. 독립된 기구가 아니다. 게다가 국가경찰위원회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처럼 합의제 행정기관이 아니다. 심의·의결만 하기 때문에 경찰청장을 견제할 수단이나 방법이 딱히 없다. 전해철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가리지 않고 국가경찰위원회의 실질화를 주문했다.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주장한 정보경찰 폐지는 아예 당·정·청의 논의 테이블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이 사라지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정보경찰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비판이 컸다. 과거에 경찰 또한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국내 정치 개입으로 보이는 정보활동을 벌여왔다는 의심을 샀다. 정보활동의 범위가 모호한 탓에 무분별하고 불법적인 정보활동으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였기에, 아예 정보경찰을 없애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였다.

실제로 2019년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정보경찰의 선거 개입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바 있다. 시민단체 연합 ‘경찰개혁네트워크’는 정보경찰 폐지의 대안을 제시했다. 정책 정보 수집은 정부 각 부처에서 담당하고, 인사 검증은 인사혁신처가 각 부처의 협조를 받아 진행하는 방안이다. 이번 법 개정에서 정보경찰의 활동 범위를 ‘치안정보’에서 ‘공공안녕’으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경찰개혁 과정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보경찰은 정권이 원하는 정보의 방향을 너무나 잘 안다. 지금이야 문재인 정부에 달콤할 수 있다. 정권 초기 윤석열 사단의 적폐 청산 작업에 기대 검찰 특수부에 힘을 실어주다가 반격당한 걸 생각해봐야 한다. 정보경찰의 힘을 키워주는 게 어떤 백래시로 돌아올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에게 ‘윤석열 사례’는 경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대한 우려로 가장 아픈 버전일 수 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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