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금고지기' 사위 2019년 한국 망명했다

최희석,연규욱 입력 2021. 1. 25. 06:03 수정 2021. 2. 1.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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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우 前 쿠웨이트 주재 北대사대리, 2019년 탈북
장인 전일춘, 김정일 동창으로 북한 통치자금 관리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대사대리를 맡았던 고위급 외교 인사가 극비리에 한국행을 택해 1년 넘게 국내에 정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인사는 김정일 일가 '금고지기'로 불리는 노동당 39호실을 총괄했던 전일춘의 사위로 알려졌다.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에 이어 엘리트 외교관이 한국으로 망명한 것이어서 남북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매일경제가 취재한 결과 류현우(한국명)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가족과 함께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가 탈북한 이후 최고위급 외교관이 탈북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류 전 대사대리는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2017년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결의 2371호에 따라 서창식 대사가 추방되면서 대사대리를 맡게 됐다. 이후 2019년 근무지인 쿠웨이트 현지에서 아내와 자식을 모두 데리고 탈북하는 데 성공했다.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은 걸프지역에 있는 유일한 북한대사관으로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을 함께 관장하는 핵심 공관이다. 유엔 제재에 따른 외교관계 격하로 현재 쿠웨이트 주재 북한대사관에는 대사가 아닌 주명철 대사대리가 파견돼 있다.

류 전 대사대리는 평양외국어대학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북한 외무성에서 근무했다. 그간 북한의 주요 무기 수출국인 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9년 9월 국내로 들어온 뒤 1년 동안 외부와 접촉을 삼갔다는 류 전 대사대리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해주고 싶어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전 모씨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경제학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평양 소재 연구기관에서 근무하기도 한 엘리트다.

류 전 대사대리의 장인, 즉 전씨 부친은 북한에서 노동당 39호실장을 지낸 전일춘이다. 전일춘은 김정일과 평양 남산고중(남한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친 과정) 동창생으로 김정일·김정은의 비자금을 2대에 걸쳐 관리해온 김 부자의 '금고지기'였다. 김씨 일가의 사치품 구입과 조달, 해외 은닉자금 등 김 부자의 비자금뿐 아니라 노동당의 통치자금 마련과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노동당 39호실장은 북한 권력의 핵심 실세로 알려져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국내에 입국한 전일춘의 사위는 북에서 핵심 고위층"이라며 "이런 사람이 남한으로 온다는 것은 김정은 정권을 떠받치는 고위층 민심이 떠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자식에 더 좋은 미래 선물하려 탈북 결심"

쿠웨이트주재 류현우 前 北대사대리 가족과 망명

외화벌이 총책임자 집안
부인은 김일성대 석사 출신
김정은체제 반감 커지나 촉각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에 이어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도 망명한 것이 확인되면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북한 고위급 사이에서 널리 퍼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대북 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 봉쇄 조치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북한 엘리트층이 느끼는 압박이 상당히 깊어진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24일 정보당국과 소식통 등에 따르면 류 전 대사대리의 망명은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 땅을 밟은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19년 9월에 이뤄졌다. 이들 모두 2017년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2371호 채택에 따라 해외 정부들이 자국 주재 북한대사들을 추방하면서 현지에서 대사대리직을 수행했다.

당시 류 대사는 참사관 직급으로, 대사에 이어 차석 지위로 대사대리를 맡았다. 북한 해외공관 직급은 보통 대사, 공사, 참사, 1~3등 서기관 순으로 편성된다. 조 전 대사대리는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중 1등 서기관으로 직급을 올려 대사대리를 맡았다. 참사관이었던 류 전 대사대리는 조 전 대사대리보다 한 직급 높은 외교관이다. 류 전 대사대리 부인도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 출신이다. 북한에서 여성으로는 흔치 않은 경제학 석사 학위 보유자다. 북한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대사급 외교관들의 탈북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 해외공관 근무자에 대한 감시와 압박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 해외에 나가 있는 외교관에 대해 상호 감시 역할과 이에 따른 처벌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서 국장은 "이전 같으면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실수에도 숙청 등 지나치게 엄정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평양 내부에서 온갖 숙청 소식을 접한 외교관들이 자신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항상 느낀다"고 설명했다.

자녀들 때문에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처벌을 당하는 사례가 많아진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대북 소식통은 "외교관들과 같은 상류층 사이에서는 가령 자녀끼리 외국 영화를 보거나 선진 세계 문물을 접하고 이에 대한 토론 모임을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이 점을 문제 삼아 강한 책임을 묻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류 전 대사대리의 장인인 전일춘이 수장으로 있었던 노동당 39호실은 북한 김정은 일가의 통치자금 관리처로 지목되는 기구다. 1970년대 중반 조직돼 북한의 외화벌이를 총괄했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조성·관리해온 기관으로 북한의 무역회사와 호텔, 외국인 상점 등을 산하에 두고 외화를 획득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주요 금융기관인 대성은행과 고려은행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강원도 문천금강제련소, 원평대흥수산사업소, 대성타이어공장 등 '노른자위' 공장과 기업 100여 곳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39호실에서 마련한 비자금은 김정은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주로 쓰인다. 지도자로서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마식령스키장이나 평양 문수물놀이장 등을 짓는 게 대표적이다. 당정군 간부들과 연회를 열거나 사치품 등을 하사하는 데도 활용된다. 미국 국무부가 앞서 밝힌 바에 따르면 노동당 39호실은 그간 위조 달러 제작과 아편 재배 등에도 손을 뻗었고 함경북도와 평안북도 농장에서 직접 마약을 생산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노동당 39호실은 조선노동당의 재정경리 담당으로 당 중앙위원회 정무국에 소속돼 있었지만 통일부가 발간한 2020년판 북한권력기구도에 따르면 현재는 당 중앙위원회 직속으로 재정경리부 또는 경제부와는 분리돼 39호실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2020년 1월 기준 39호실장은 신룡만이다.

노동당 39실장을 지낸 전일춘은 김정일의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1981년 북한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을 지낸 뒤 1993년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1998년 노동당 39호실 부실장 등을 거쳤다. 2010년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39호실장을 맡았고, 같은 해 국가개발은행 이사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신룡만 현 실장은 전일춘 밑에서 오랜 기간 부실장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희석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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