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트렌드] 공부는 어른들에게 더 필요하다 / 김용섭

한겨레 2021. 1.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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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혹은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우린 이런 상황을 자주 만나고 있다. ‘프로페셔널 스튜던트’(Professional Student)는 원래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던 말이었다. 직업은 갖지 않고 학위만 계속 쌓아나가는 대학생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건 공부를 좋아해 계속 여러 공부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취직도 잘 안되고, 사회생활하는 것도 두렵고, 성인으로서 책임지는 것도 회피하기 위해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며 계속 수업만 듣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살짝 경멸하는 의도로 쓰는 말이기도 했고, 살짝 안타깝게 바라보며 쓰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니 말의 의미도 바뀐다. 사회생활하면서 얼마든지 대학의, 그것도 전세계 어디에 있는 대학의 수업도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적 명문대도 무크(MOOC: 온라인 공개수업)를 통해 수업을 공개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온라인으로 수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시대다. 이제 시간 없어서, 돈이 없어서는 핑계가 될 수 없다. 프로페셔널 스튜던트는 대학에만 머물며 사회생활이자 성인의 삶을 회피하는 온실 속 화초의 모습이 아니라, 치열하게 사회생활하면서 변화에도 신속히 대응하려고 상시로 공부하며 계속 성장하고, 진화하려는 이들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이다. 대학 진학률은 계속 떨어진다. 학위가 가진 의미가 과거에 비해 점차 퇴색되고, 기업으로서도 학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학이 인재 양성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단 얘기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 취업자 중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직원들의 직무교육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들도 계속 늘어난다. 프로페셔널 스튜던트가 새로운 인재상이 되는 것이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중요하고, 그러려면 현재에 맞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도 변신해야 생존한다. 학령인구 감소 탓만 하는 건 너무 현실 인식이 없는 거다.

일본 정부의 올해 예산 중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결혼을 희망하는 남녀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지원하는 항목이 있다. 나이나 학력, 연봉 같은 기본 조건으로 연결해주는 방식이 한계가 있다 보니, 인공지능 시스템을 이용해 취미나 가치관 등 더욱 정교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호감을 가질 사람을 파악해서 연결시키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경제 규모에 비해 디지털화에 아주 뒤처진 나라다. 민간기업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말도 안 되게 더디고, 정부는 더 말도 안 될 수준이다. 그런 나라에서 인공지능 기술까지 활용해서 중매를 시켜주는 데 정부와 지자체가 나선다는 건 절박함 때문일 거다. 일본은 지자체 중 절반 이상이 결혼할 남녀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고, 이 중 상당수는 인공지능 시스템까지 활용하고 있다. 결혼할 의사가 이미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건 인공지능이 도움을 주겠지만, 중요한 건 결혼할 의사가 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분명 우리나라의 지자체도 중매에 인공지능을 쓰겠다는 곳이 곧 나올 테고, 이걸 지원하는 정부 예산도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자체 중에선 다자녀를 출산하면 수천만원까지 주는 곳도 있고, 주택자금을 빌린 가구에서 출산하면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아이 셋을 낳으면 최대 1억원까지 탕감해주는 곳도 있다.

일본과 한국은 묘하게도 저출산 예산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돈을 잔뜩 뿌리면서도 출산과 육아는 부모의 몫, 그중에서도 엄마의 몫으로 두는 사회적 인식은 크게 바꾸지 못해서다. 결혼과 출산의 직접적 당사자인 2030 세대는 현재를 살아가는데, 이들을 위해 정책을 세우는 이들은 여전히 과거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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