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돈의 시대, 전향의 기로

한겨레 입력 2021. 1.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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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스무살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어딜 가나 돈이 화제다. 빚도 내고 영혼도 끌어모아서 투자하는 이야기들이 만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에 일자리를 잃고 폐업한 서민들의 신음소리를 부동산과 주식으로 자산 불린 소식들이 뒤덮는다. 이 아찔한 상황에 우리 마을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30년 가까이 교직 생활을 한 봉실은 성실의 아이콘이다. 교사로서도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해온 이다. 주말이면 틈틈이 학급 아이들과 영화관, 미술관을 다닌다. 그녀의 학교에는 시쳇말로 ‘급식 먹으러’ 학교에 나올 만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문화적 기회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체험과 성장의 사다리를 놓아주고 싶어 하는 좋은 선생님이다. 그런 그녀 얼굴에 요즘 웃음이 없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집도 자산도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동안 뭐 했나 싶어서 자괴감이 들어요.” 외진 이 동네까지 부동산 광풍이 급습하자 전세살이에 만족해왔던 그녀의 삶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집은 없어도 연금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들 하는데 자식들은 어떻게 해요? 출발선부터 이렇게 격차가 큰 세상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무실이 온통 주식 이야기라 불편하다던 그녀였다. 이제는 주식을 해야 할까 고심이란다. 살아온 삶의 가치가 요동치는 이들이 어찌 그녀뿐이랴.

‘남들보다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포모(FOMO)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단다.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패션이나 취향이라면 유행에 뒤처진들 무어 그리 큰일일까? 심지어 돈벌이가 적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 노동의 대가로 ‘소득’만 꾸준하다면 안분지족 못할 일도 아니다. ‘자산’의 세상이 닥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삶이 재난인 시대다. 소득은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자산을 가지면 돈이 돈을 벌어준다. 심지어 폭등하며 불어난다. 내 성실한 노동의 세월이 초라해지고 억울해졌다.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까 함께 고민하는 인생 길동무 네명이 있다. 물질의 풍족보다는 관계의 풍요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의기투합해왔다. 얼마 전 모임에선 달랐다. 저마다 상실감과 열패감을 토해냈다. “이제 돈 좀 있는 친구들은 대놓고 돈 자랑을 해요. 돈으로 줄세우기를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서글프고 인생 헛살았나 싶어요.” 한 친구가 토로했다. “내가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가 조롱당하는 느낌이죠. 갑자기 루저가 된 느낌이에요.” 다른 이가 받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성공 욕망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야 할까?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떠드는 대로 살아야 할까? 문득 성경 한 대목이 떠올랐다. 다른 나라로 떠나는 주인이 세명의 종에게 재산을 맡겼다. 돌아왔을 때 두명은 재산을 불려 칭찬을 받았지만, 한명은 땅에 묻어두었다가 쫓겨났다는 이야기다.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저축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요즘 보면 내가 돈을 땅에 묻은 어리석은 종인 것만 같아요.” 내 한탄에 다들 한숨을 내쉰다.

세상에 부자 되기 싫은 사람이 있을까? 다만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어쩌다 페이스북에 글 하나만 올려도 ‘좋아요’와 댓글 수에 신경이 쓰이는 ‘유리 멘탈’이다. 그런 내가 알림 설정 따위를 해두고 피 말리는 주가의 등락을 지켜볼 수 있을까? 부동산 정책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전세 끼고 갭투자 전략 따위를 짜며 살 수 있을까? 투자하는 삶과 조화로운 삶의 공존은 몹시 어렵다. 부자는 못 됐어도 소소한 행복의 길을 선택하고서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그리고 지금 뒤통수를 세게 맞고 있는 느낌이다.

행복의 비결 같은 건 잘 모른다. 그저 관계 속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좋은 사람들이 같이 먹고, 노래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살 때가 그리워요. 그때는 주변에서 집 사고 돈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시큰둥했어요.” 돌이켜보니 관계에서 얻는 기쁨으로 삶이 충만하니 ‘부자의 길’ 따위 기웃거릴 필요가 없던 시절이다.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자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이쪽 세계가 초라해졌다. 재난 속 자산격차 확대가 더욱 드라마틱하게 두드러졌다.

얼마 전부터 주식 유튜브를 기웃거린다. 도대체 뭐길래 하는 삐딱함이 절반, 낙오하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절반이다. 반대편 세계를 이해하면 내가 선택했던 세계가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도 같다. 며칠을 끙끙대며 주식 계좌도 텄다. 어떤 선택을 할지 여전히 고심 중이다. 부끄럽지만 나의 전향 과정을 이웃들과 솔직히 나눌 생각이다. 이 욕망을 길들일 지혜와 용기를 이웃에게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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